'독서일기'에 해당되는 글 33건

  1. 2012.08.25 안주
  2. 2012.07.06 제로의 초점
  3. 2012.05.29 고구레사진관
  4. 2012.02.24 뭐라도 되겠지 / 마지막 기회라니?
  5. 2011.12.28 말하는 검
  6. 2011.09.24 도가니, 책 그리고 영화. 1
  7. 2011.08.03 7년의 밤
  8. 2011.07.28 내 심장을 쏴라
  9. 2011.07.27 생강
  10. 2011.07.25 마리아 비틀 2
독서일기2012. 8. 25. 15:30
안주 - 10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


미움받고 꺼리는 존재가 되는 건 신에게도 괴로울 일이다. p.108


 "어린 아이란 뜻밖에 이치를 따지는 생물입니다. 어른이 잘난 척 설교를 늘어놓으면서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다르면, 금세 발견하여 끽소리도 못 하게 하지요." p.350 


―얘야, 구로스케. 

섭섭하냐. 

나도 섭섭하다. 

너는 또 혼자가 되겠지. 이 넓은 저택에서 홀로 살게 될 게다. 

하지만 구로스케. 같은 고독이라도, 그것은 나와 하쓰네가 너를 만나기 전과는 다르다. p.441




미야베 미유키의 '필생의 사업'으로 선보이는 연작소설이라고 한다. 

'필생의 사업'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북스피어에서는 독자펀드까지 모금하여 가열차게 마케팅을 하고 있다.


이런 거창한 타이틀과 가열찬 분위기에 약간 움츠러든 마음으로 책장을 펼쳤지만, 역시 미야베 미유키는 항상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같은 작가의 책을 수십 권째 읽고 있는데도 질리지가 않으니 이는 필시 독자가 제정신이 아니거나 작가가 너무 훌륭하거나 둘 중 하나일거다. (아, 어쩌면 둘 다 일지도.) 



일단 북스피어 책이 거의 그러하듯이 책 자체가 참으로 마음에 든다. 

570페이지가 훌쩍 넘어가는 웬만한 책 두 권이 울고갈 정도의 분량. 손에 쥐면 손 안에 가득 들어차는 기분이 제법 알차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 옹골찬 기분이 좋아 몇 번이고 만져보고 또 만져보게 된다. 

게다가 이런 고품격 띠지라니. 다른 책들의 띠지가 그냥 벽지라면 안주 띠지는 실크벽지. 다른 책이 그냥 커피라면 안주는 T.O.P (뭐래) 



이게 바로 고품격 띠지 되시겠다.


 



초반 몰입도가 조금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물을 처음 접한다면 진입장벽이 조금 높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나가야' 라던가 '오캇피키' 같은 고유명사야 차치하고서도 하나같이 오OO인 여자 등장인물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리라. 하지만 책 옆에 메모장 두고서 복잡한 이름 헷갈리지 않게 메모하면서 한 번 읽어보면 책장을 덮으면서 뿌듯할거라 장담한다. 역시 읽기를 잘했어. 이렇게 생각하면서. 


분량이 상당해서 읽기에 조금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중편 네 개를 읽는다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하니 이틀만에 뚝딱 읽었다. 특히 세 번째 안주부터는 가속도가 쫙쫙 붙는다. 



전작인 흑백은 제법 매서웠는데, 안주는 내용이 말랑말랑 한 것이 꼭 책 속에 나오는 '구로스케'를 닮았다. 

반려동물을 키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신자에몬과 하쓰네의 기분을 더 생생하게 이해하리라. 

평소에는 '사랑하니까 보내준다니 그런게 어딨어'라고 생각했는데 '안주'를 읽으면서는 기어이 눈물바람을 하고야 말았다. 아무튼 강추. 



그리고 흑백에서 주로 활약했던 신랑감1과 안주에서 활약하는 신랑감2 중에 누구를 응원할지 마음으로 정해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가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신랑감2가 마음에 든다. 흑백을 다시 읽으면 마음이 또 바뀔지도 모르지만. 헤헤.) 





그나저나 오하쓰 시리즈는 더 나올 계획이 없다니 어찌나 서운한지. 

그런 의미에서 미미여사님 에도시대물들 다시 한 번 읽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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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선♪
독서일기2012. 7. 6. 15:42



제로의 초점

저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출판사
이상북스 | 2011-11-2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설국의 아름다움 속에서 펼쳐지는 실종과 살인!‘일본 사회파 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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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꿀꿀하여 중앙도서관 들린김에 마쓰모토 세이초 옹의 일본의 검은 안개를 빌려볼까나 하고 갔다가 누가 상권만 쏙- 대출해간 걸 보고 낙심하던차. 옆에 있던 제로의 초점이 눈에 들어와서 바로 데려왔다. 


사실 이걸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나의 불안과 엄마의 걱정과 분노 뭐 이런 것들이 뒤섞여 설레는 상대가 있는 것도 아닌 마당에 심장이 쿵쾅거려서 당최 공부를 할 수가 없는 상태였던지라 이왕 도서관에 왔으니 책이나 읽자 싶은 마음에 읽기 시작한 것이 정신을 차려보니 400페이지짜리 책 한 권이 뚝딱. 이건 나의 (할 일 미뤄두고 책 읽을 때만 발휘되는) 남다른 집중력 탓이 아니라 마쓰모토 세이초 옹의 필력 탓이다. 뭔 소설을 이리 박진감있게 쓰신대. 



포인트는, 


변영주 감독의 '화차'가 떠오르는 구성. 

무뚝뚝한 미야베미유키 여사님 같은 느낌. (이건 여사님이 세이초 옹을 닮은 거라고 해야겠지?)

범인이 누군지 정해놓고 썼을까 아니면 누구를 범인으로 할지 고민한 경우의 수 두 가지를 다 담은걸까.





자꾸만 등장하던 히말'리'야 시다 같은 오타. 는 초등학교 교목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나같은 사람한테만 거슬릴까. 그나저나 오타같은 걸 보고 있자니 이건 직업병도 아니고 북스피어 독자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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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선♪
독서일기2012. 5. 29. 21:46




고구레 사진관(상)

저자
미야베 미유키 지음
출판사
네오픽션 | 2011-12-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소년 앞에 날아든 사진에 감춰진 기묘한 사연!일본의 인기 미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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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레 사진관(하)

저자
미야베 미유키 지음
출판사
네오픽션 | 2011-12-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소년 앞에 날아든 사진에 감춰진 기묘한 사연!일본의 인기 미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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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들의 눈이란 하나같이 휴대용 카메라나 다름없어. 그냥 보는 게 아니야. 기록한다고. 게다가 언제든 재생, 편집이 가능하지. 영화 카메라처럼. 



"그런 중요한 얘기는 자기 입으로 해야 해. 안 그러면 인간력을 키울 수 없어. 상, 301 



사람은 누구나 말하고 싶어한다. 비밀을. 무거운 짐을. 

언제라도 좋은 건 아니다. 누구라도 좋은 것도 아니다. 때와 상대를 가리지 않는 비밀은 비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택되는 때와 대상에 기준은 없다. 등을 돌리고 앉은 운전기사라도 좋고 어느 날 들이닥친 고등학생 두 명이라도 좋다. 흘수선을 넘어섰을 때, 쌓이고 쌓인 침묵의 마지막 지푸라기 하나가 낙타의 등뼈를 부러뜨렸을 때. 상, 388



인간을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냐? 타인의 행복만큼 효율적으로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하, 90



에이이치의 마음속 한구석에서 꽤나 큰 부품이 움직였다. 고장이 나거나 빠져서 움직인 게 아니라 가동된 것이다. 하, 223



"비전투원은 아무도 안 죽여도 돼."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똑같겠지만 죽여야만 하는 공포는 없다. 한창 전쟁 중이라도 병사가 아니면 사람을 죽이지 않고 끝낼 수 있다.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그런 뜻이야." 하, 234



-장례식이란 고인의 삶의 방식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남은 인간들의 본성을 까발리는 장이지. 하, 369



 큰 사건이 벌어졌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너무나 비일상적인 색깔을 띤 사건이라 그런지 지나버리고 나니 꿈처럼 여겨졌다. 적어도 에이이치에게는 그랬다. 하, 515






북스피어 출간작이 아니라서 한참 후에야 읽은 고구레 사진관. 

다른건 몰라도 표지가 좀 너무하다. 


메모도 한참 후에 올리게 되는구만. 

읽은지 오래되서 막 읽었을 때의 감상이 기억 안 난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미미여사님은 북스피어에서. 

(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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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2012. 2. 24. 17:16

뭐라도되겠지호기심과편애로만드는특별한세상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지은이 김중혁 (마음산책,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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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제목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서 구매했으면서도
좀 가볍지 않을까 싶어서 읽고 되팔아야겠다는 마음에
알라딘 슈퍼바이백을 신청해놨는데

안팔아.
두고두고 놔두고 또 읽을거야.

 


마지막기회라니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지은이 더글러스 애덤스 (홍시,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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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긴 이름의 책을 쓴 작가.
더글러스 애덤스가 쓴 논픽션. (그렇지만 픽션보다 재미나요. 우왕.)
김애란 작가의 추천서라는 말에 냉큼 구매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역시 혼자사는 매력적인 작가 김애란 언니임. 우왕.)

도서관에서 책 정리 할 때 '은하수~' 제목 보고 왠지 마음에 안 든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야. 취소. 죄송해요.

2001년에 사망했다는 저자 소개를 보고 
노자와 히사시가 사망했다는 걸 알았던 때 만큼 안타까웠다. 

아무튼 이 책은 꼭 읽어야 한다. 두 번 읽어야 한다 꼭. 

20년 전에 '마지막 기회' 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가 절판.
그리고 2010년에 재 발간 되었단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르니 꼭 소장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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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선♪
독서일기2011. 12. 28. 21:23



 

이 검은 사람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혹은 잊어버린 나쁜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물건이네. 그래서 함부로 세상에 나오면 안 되지. 나는 괜찮을 거라 생각하지 말게. 나쁜 마음은 누구든 가지고 있는 법이니. 그저 우리는 항상 그런 마음을 저도 모르게 마음속에 담아 두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살아갈 따름이지. 이 검은 그런 마음을 불러일으킨다네……. 우리 어르신께서는 그 사실을 간파하시고 세상에 해가 되는 이 검을 봉인하라 명하셨지. 이 일을 절대로 발설해선 안 되네. 이 검에는 한 번 보기만 해도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해괴한 힘이 있으니……. p.241




여사님의 초기 중단편 모음집이다. 총 네 편의 중단편이 실려있고 그중엔 북스피어 출판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오하쓰 비기닝' 또는 '더 비긴즈' 정도라고 볼 수 있는 '길 잃은 비둘기'와 '말하는 검'이 있다. 원제이기도 한 '가마이타치'에는 반가운 겐안 의원님도 나오시고.

국어 판의 출간 순서는 <흔들리는 바위-->미인-->말하는 검>이 되고 말았는데 원래대로라면 <말하는 검-->흔들리는 바위-->미인>이었어야 하지요. 『말하는 검』의 원제는 가마이타치, 일본에서는 1992년에 발간되었습니다.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가 1991년에 발표되었지만 집필 순서는 『말하는 검』이 먼저예요. 에도시대물로는 처녀작이니만큼 미미 여사도 애틋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인지 이례적으로 '작가의 말'을 남겨두었습니다. 한국어 판에는 권두에 실었으니 읽어보시길. 

『흔들리는 바위』와 『미인』에는 기담집 '미미부쿠로'와 '네기시 야스모리 부교'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부교는 시정에 떠도는 '기이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모으는 게 취미인 사람. 그걸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이 바로 '미미부쿠로(귀로 들은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주머니)'인데, 『흔들리는 바위』에서는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돌’을 『미인』에서는 ‘사람 말을 알아듣는 고양이’와 '천구(天狗)라는 요괴'에 관한 전설을 모티브로 취하고 있습니다. 
 (출처: 북스피어 출판사 블로그) 
 

역시 여사님은 여사님이다. '우리 이웃의 범죄'를 읽으며 어떻게 첫 작품을 이렇게 썼는가 감탄을 했었는데, 시대물 첫 작품인 '말하는 검' 역시 같은 느낌을 준다. 우리나라 출간 순서인 흔들리는 바위 - 미인 - 말하는 검 순서대로 읽었는데 이번 책을 읽으면서 초기작이라 필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앞의 작품에서보다 어린 오하쓰를 보면서 아련한 기분마저 들었다. 이 책은 앞서 본 오하쓰 시리즈를 다시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는 책이다. 집필 순서대로 읽는 것도 좋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북스피어 출판사의 출간 순서도 매우 마음에 든다. 


"에도 시대는 사람의 목숨을 간단히 뺏을 수 있는 시기였기 때문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연대감이 매우 강했습니다. 제가 에도 시대물을 계속 쓰고 싶어 하는 이유는, 그렇게 따뜻한 인간의 정이 있는 사회를 향한 동경 때문입니다. 작은 것도 함께 나누고 도와가며 살았던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책 속에서 사람이 무수히 죽는데도 책을 덮고나면 잔혹하다기보다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유는 여사님이 반한 에도시대의 매력이 여사님의 글을 통해 독자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런 여사님의 매력에 푹 빠진 나는 이제 여사님 작품이라면 덮어놓고 읽게되는 팬이 되었달까. 여사님 만세!





아참, 이번 책에는 오랜만에 이스터 에그도 있으니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시길. (참고로 나는 책 손에 잡은지 5분만에 발견했다는 ^_^vV 이런 적 처음이야. 자랑자랑) 힌트를 드리자면 참으로 시의적절한 이스터에그랄까. 아무튼 책 구석구석 꼼꼼히 살펴보는 자에게 이스터에그 발견의 기쁨이 함께할지니. 그 기쁨 꼭 스스로 찾아서 느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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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선♪
독서일기2011. 9. 24. 01:22


도가니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공지영 (창비,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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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감독 황동혁 (2011 / 한국)
출연 공유,정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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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2일. 공지영 작가의 도가니를 원작으로 한 영화 도가니가 개봉했다.

얼마 전, 책으로 도가니를 읽은터라 영화를 볼까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인상깊게 읽은 책은 영화로 보고 싶지 않기도 하고, 책과 영화의 내용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뿌리는 같은 이야기이니 보고나면 그 먹먹한 마음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고. 그런저런 생각에 영화를 볼 생각은 없었는데, 트위터에 시사회를 사람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사람들이 입을 모아 영화의 불편함은 그냥 불편함이 아니라 '꼭 알아야하는, 그냥 지나쳐서는 안되는 불편함' 이라고 했다. 영화가 궁금해졌다. 마침 학교 근처 극장에서 출연배우들이 무대인사를 한다는 소식까지 들려와서 바로 예매를 했다.


역시 무대인사의 힘은 커서 객석은 꽉 들어찼고, 소개와 함께 들어온 배우 공유의 존재감은 엄청났다. 왜 배우들이 영화 개봉하면 부지런히 무대인사를 다니는지, 현장에 있어보니 생생히 느껴졌다. 특히나 공유는 이 영화제작하는데 처음부터 많은 부분 기여했다고 들었는데, 그때문인지 형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차분하게 영화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근데 말이지. 내 앞자리에 앉았던, 뒤늦게 와서 플래카드를 번쩍 들어 내 시야를 가리고 공유가 무대인사 마치고 나가자마자 번개같이 따라나갔던 그녀들. 글쎄, 이미 영화를 봤고 단지 좋아하는 배우의 무대인사때문에 영화관을 다시 찾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대들이 좋아하는 그 배우는 자기 얼굴보려고 자리 박차고 뛰쳐나오는 팬들보다는 본인이 출연한 영화를 보고 깊이 공감해주면 더 고마워하지 않을까나. 나가준 덕분에 난 뒷자리에서 편하게 보긴 했지만, 맙소사. 영화관에 플래카드는 난생 처음봤네.) 


자리를 박차고 떠난 그녀들이 안겨준 황당함과 영화를 다 보고나면 무력감에 일어나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공유의 말을 곱씹으며 영화를 봤다.


공유의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진짜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 까지도 일어날 엄두가 안났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현실이 답답한 건 다음문제였다. 
책과는 달라진 영화의 내용은 더 잔인했다. 꼭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책이 더 좋다는 내 고집을 바꿔놓을만큼 잘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강인호의 고뇌를, 서유진의 의지를 담아내기엔 125분은 너무 짧았고, 스스로 '충격실화'라고 칭하는 그 사실을 쫓아가는 것 만으로도 버거웠다. 전체적으로 인물들이 너무 평면적인 캐릭터가 되어버렸다. 특히나 가장 아쉬웠던 점은 주연 배우들이 너무 젊다는 것. 개인적으로 배우 정유미는 좋아하지만 서유진을 소화하기엔 너무 맑고 여린 얼굴을 갖고 있었다. 좀더 연륜있고, 아이를 키워본 배우들이 주연을 맡았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책보다 좋았던 점은 딱 하나. 민수의 눈빛이 영상으로 구현되었다는 점.

그 눈빛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백승환이라는 이름을 엔딩크레딧에서 찾아냈다.
혹여나 수술해서 얼굴 망가뜨리지 말고, 건강하게 잘 커서 좋은 배우가 되면 좋겠다.


나간김에 이것저것 사려던 것도 있었는데, 도저히 그럴 기분이 나지 않아 그냥 돌아오는 길에 오랜만에 방치해뒀던 블로그에 새 글을 올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저번에 읽고서 마음에 드는 부분 사진으로 찍어만 뒀던 것도 정리해 올린다.


의미도 있고 영화자체만 놓고 본다면 볼만한 영화인 것은 맞다. 망설이는 이유가 '불편하고 우울할까봐' 라면 보라고 권하고 싶다. 하지만 책과 영화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책.

그리고 중요한 점은 책을 덮고,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도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현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다짐.


 천연요새처럼 솟아 있는 절벽 끝에 맞닿은 운동장 아래는 광활한 갯벌이었다. 그 너머에는 바다가 있을 것이다. 썰물이 모두 빠져나간 지금 그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어딘가에 분명히 바다가 있을 것이다. 33


"그게 말이야. 우는 일이라는 게, 그게 장엄하게 시작해도 꼭 코푸는 일로 끝나더라고." 135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 때문에 날것 그대로의 몸뚱이를 내놓고 어떤 치장도 설득도 하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진실은 가끔 생뚱맞고 대개 비논리적이며 자주 불편하다. 진실 아닌 것들이 부단히 노력하며 모순된 점을 가리고 분을 바르며 부지런을 떠는 동안 진실은 그저 누워서 감이 입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 세상 도처에서 진실이라는 것이 외면당하는 데도 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면 있는 것이다. 165


"민주화되고 나면 더이상 이런 일 안할 줄 알았어요. 화가 난다기보다는 뭐랄까요? 견고한 저 성벽이 정권이 바뀐다고 변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예수가 다시 온대도 또 십자가에 못박혀 죽겠구나 싶기도 하구요. 저런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또다시 예수를 죽이겠죠." 189-190


"……나는 생각했어. 왜 세상에서는 착한 사람이 맞고 고문당하고 벌받고 그리고 비참하게 죽어가나? 그럼 이 세상은 벌써 지옥이 아닐까? 대체 누가 이 질문에 대답해줄 것인가? 누군가 그러더라. 엄마였던가, 선생님이었던가, 아님 아버지와 친분이 있는 다른 목사님이셨던가…… 아니면 그 사람들이 모두 그랬던가. 열심히 공부하고 그래서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을 알게될 거라고, 그리고 나도 그 말을 믿었지. 그런데 얼마 전, 자애학원 사건을 접하면서 나는 깨닫게 된 거야. 어른이 되면 그 대답을 알게 되는 게 아니라, 어른이 되면 그 질문을 잊고 사는 것이라고 말이야. 이제 나는 정말 그 질문에 대답하고 싶어. 그렇지 않다면 내 아버지의 삶도 연두와 연두 아버지도 너도 나도, 우리의 삶은 정말 꾸드러빠진 떡조각처럼 무의미해질 거야. 가난한 것도 두렵지 않고 고통도 그리 무섭지 않아. 내게 가해진 모든 평판들 소문들도 자기네들끼리 실컷 지껄이라지. 하지만 의미가 사라지는 것, 뭐랄까, 우리의 삶이 그냥 먹고 싸는 것, 돈을 모으고 옷을 사고 하는 그 너머의 무엇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야, 나는 확인하고 싶어. 그렇지 않다면 살아가는 걸 견딜 수 없을 거 같아, 강선생." 227


가난이 남루한 이유는 그것이 언제든 인간의 존엄을 몇장의 돈과 몇조각의 빵덩어리로 치환할 수 있기 때문일까. 233


서유진은 오래도록 그런 생각을 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뭐지? 하고 누군가 물으면 그녀는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건 거짓말이었다. 거짓말. 누군가 거짓말을 하면 세상이라는 호수에 검은 잉크가 떨어져내린 것처럼 그 주변이 물들어버린다. 그것이 다시 본래의 맑음을 찾을 때까지 그 거짓말의 만 배쯤의 순결한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다. 246


"……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대해 너무 이상한 믿음을 가진 거 아니에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유명한 이유는 그게 천지창조 이래 한번 일어난 일이라서 그런 거라고는 생각 안해요?" 254-255


"세상 같은 거 바꾸고 싶은 마음, 아버지 돌아가시면서 다 접었어요. 난 그들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는 거에요." 257


"…… 내가 불쌍하고 불행한 적이 있다면 그건, 나도 가끔은 뻔히 아니라는 걸 알면서 그것과 타협하고 싶어질 때야."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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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선♪
독서일기2011. 8. 3. 13:20

7년의밤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정유정 (은행나무,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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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진실, 너무나 어마어마해서 감당할 수 없는 일은 못 본 체하고 싶은 것이 인간이라는 영장류의 천성일지도 몰랐다. 361

어디선가 그런 얘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인간은 총을 가지면 누군가를 쏘게 되어 있으며, 그것이 바로 인간의 천성이라고. 474





아무리 도서관 홈페이지를 기웃거려도 예약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홧김에 구매.
이 책은 그렇게 내 손에 들어왔다.
배송상자에서 꺼내들면서 책이 제법 묵직하다고 생각했다.
읽고나니 책의 무게에 온 몸이 눌린 느낌이다.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 

다소 불친절하고 충격적인 첫 문장과는 달리 '살인마'의 아들에게 쏟아지는 물리적, 정신적 폭력을 담담하게 서술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시종일관 눈을 뗄 수 없게 매력적이다.

어둠과 안개가 주변을 둘러싼듯한 느낌이 책장을 덮고서도 한참동안 가시지 않는다.

책을 읽고나서는 지금 내가 느끼는 느낌 그대로 박제를 해놓고 싶었다.
이 느낌이 날아갈까 입을 열어 말을 하기가 꺼려졌다.

속도감이 넘치지도, 소름이 돋을만큼 자극적이지도 않지만 대신에 서서히 옥죄어 드는 기분을 맛보게 한다.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는 재미있었지만 작가의 머릿속에 구현되는 장면이 내 머리속에서는 잘 구현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고, '내 심장을 쏴라'에 와서야 비로소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이 내 눈 앞에도 어느정도 보이는 듯 했다. 그리고 '7년의 밤'을 만나보니 머릿속으로 그린다는 의식조차 없이 어느새 스르르- 주변에 안개가 드리운 느낌이다.


혹자는 소설 속의 영제가, 혹은 승환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평을 하기도 하나보다.
그런데 나는 책을 덮는 순간까지 그런 생각이 한차례도 들지 않았다.
이미 우리 주변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넘쳐나고, 허구보다 더 무서운 현실이 존재하기도 하니까.
영제, 승환, 현수, 서원, 세령, 하영, 은주.
그들이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는 이미 책의 내용으로 충분히 설명된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배경은 세령마을. 그리고 세령호.


책을 읽다보니 아무래도 모티브가 된 지역이 있을 것 같았다. 백프로 가상공간이라기엔 그 설명이 너무 상세하기도 하고, 보성, 장흥, 해남 같은 지역은 실제 지명이 나오기도 하니까.  궁금해져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장흥의 탐진댐이 아닐까 하고 추측하는 글도 봤다. 그러나 계속 읽다보니 탐진댐이라기에는 조금 어색한 부분이 몇군데 있었다.(장흥이라는 지명이 그대로 나오기도 하고, 아무래도 순천으로 추정되는 호수 근처의 S시의 존재 등) 의문은 권말에 작가의 말에 나오는 J댐이라는 단어에 스르르 풀렸다.



바로 주암댐.

그리고 우연히도, 내가 태어났을 당시 살던 마을이 바로 그 댐으로 인해 물 밑에 잠겨있다.

 




 











주암댐. 책에 삽입된 지도의 댐 그림과 유사해 보이기도.




영아기를 보낸 마을이라 기억은 전혀 없지만 주변을 지날 때 마다 묘한 감정이 들곤 했다.
책을 읽고나니 내가 태어났던 마을도 아틀란티스가 되어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아련해졌다. 


이렇듯 정유정작가의 작품의 배경이 주로 광주, 전남인 것도 내가 그녀의 책을 읽는 큰 요인이다.
그녀는 5.18을 이야기 하고, 그녀의 책엔 득량도가 자주 등장한다.
(득량도는 보성과 고흥의 바다 사이에 있는 섬으로, 맑은 날이면 지금 우리집 거실에서도 볼 수 있다.)

그녀의 글 곳곳에 내가 살던 곳이, 가족들과 여행했던 곳들이, 학창시절 소풍갔던 곳들이 튀어나온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광주, 전남지역을 속속들이 잘 알고있고, 이해하고 있고, 사랑한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녀의 글은 서울에 살면서도 고향을 그리는 마음에 단비를 내려준다.



작가는 모티브가 된 곳의 실제 지명을 밝히면 논란이 있을까봐 조심스러워 하는 모양이던데
글쎄, 실제 살인사건도 영화로 찍어가서 개봉한 마당에 허구의 이야기로 무슨 문제가 생기겠는가.
오히려 관광상품 개발에 혈안이 된 전남 지자체들의 특성상 수년 내에 주암댐 근처에 '7년의 밤 여행상품'을 개발해 내지 않을까가 더 걱정이다. 집에 내려가면 유명해지기 전에 둘러봐야지.


의도한 것은 아닌데 우연히 정유정작가의 작품을 출간순서대로 읽었다.
열한 살도 아닌 마당에 열한 살 정은이를 읽고 펑펑 울었던 중학생이 20대의 중반이 되어 그 작가를 다시 만났다.
작가는 10년이라는 시간의 간극보다 더 어마어마한 이야기꾼이 되어 내놓는 작품마다 계단을 대여섯개씩 훌쩍 뛰어넘고 있다.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은 어떨까. 기대되는만큼 두렵다.



책머리에 지도가 첨부되어있어 이해를 도와준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정작 중요한 사택부분이 딱 중간이라서 책을 주리를 틀어야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 읽다가 위치를 확인하려면 다시 앞 장을 여는게 불편하다는 점 정도?
(은행나무 출판사에 북스피어의 책표지 안쪽 활용이라는 아이디어를 살짝 알려주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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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선♪
독서일기2011. 7. 28. 16:45

내심장을쏴라제5회세계문학상수상작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정유정 (은행나무,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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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이 건넨 책을 받아 펼쳐봤다. 찢어진 책장들이 풀과 스카치테이프로 정성스레 붙여져 있었다. 구겨진 책장에는 다리미로 누른 흔적이 남아있었다. 목젖이 묵직해져왔다. 서글픈 것을 본 탓이리라. 그가 책장과 함께 붙인 것, 다리미로 눌러 없앤 것. 그건 알코올 중독자이자 노숙자였던 한 남자의 희망과 절망이었다. 167

"어쩔 수 없을 때도 있어. 살다보면, 가끔." 321

"최근 들어 자주 꿈을 꿨어. 한 번씩 꿀 때마다 그날 밤에 성큼 접근해 있었고. 난 두려웠어."
"꿈꾸는 게?"
"아니. 내가 벼랑에 발끝으로 버티고 서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게. 인정하면 선택해야 할 테니까. 발을 떼버리거나, 그날 밤을 끌어내서 진실과 대면하거나." 323-4

운명이 내 삶을 침몰시킬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작가의 말.




정신병원이 배경이라는 점에서 덴도 아라타의 '영원의 아이'가 생각나기도 하고,
두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는 이사카 고타로나 가네시로 가즈키의 작품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재미있다.
주인공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처절하지만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다 귀엽다.

정유정 작가를 만남으로써 일본소설만 줄창 읽어대던 내 습관이 변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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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선♪
독서일기2011. 7. 27. 14:01

 

생강 - 8점
천운영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어둠 때문이다. 어둠은 소리를 부풀리고 소리의 근원을 왜곡시키는 법이다. 보이지 않아서 정체를 알 수 없고, 정체를 알 수 없어서 두려운 것이다. 알 수 없음이 공포를 조장하고, 공포는 공포를 증폭시킨다. 공포에 굴복해서는 안된다. 어둠에 속아서는 안된다. 100

비밀을 나눠갖는 것이 관계를 공고히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었다. 가까운 사람들만이 비밀을 공유할 수 있으며, 비밀의 공유여부가 관계의 척도라고 믿었다. 하지만 비밀이 때때로 폭력이 된다는 것도 잘 알았다. 비밀을 공유하자는 것은 무거운 짐을 나눠지자는 것이었다. 짐을 나눠들자고 덤벼드는 비밀은 너무나 일방적이어서 원하지 않아도 짐을 질 수밖에 없었다. 136

물이 차갑다. 더운물을 틀어드릴게요. 너무 뜨겁다. 내 손도 뜨거워요. 난 잘못한 것이 없다. 사람을 때리는 건 어쨌든 나빠요. 내가 때린 건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이었어요. 틀린 사람들이었다. 다른 사람이었지요. 맞을 만해서 맞은 거다. 맞을 만해서 맞았다고 믿게 만드는게 더 나빠요. 정의를 위해서였다. 당신을 위해서였어요. 아버지를 위해서였다. 아버지는 당신을 버렸어요. 가족을 지키려고 그랬다. 그래서 다른 가족들이 사라졌죠. 이제 곧 끝난다. 끝은 없어요.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 그들한테 왜 그랬어요. 할일을 했을 뿐이다. 하지 말아아 할 일을 한 것이죠. 내가 죽기를 바라는 것이냐. 살기를 바라는 거죠. 이건 내가 아니다. 그게 당신이에요. 내가 한 일이 아니다. 당신이 한 짓이에요. 내가 아니다. 당신 맞아요. 259-60



어딘가에서 본 추천도서였다.(아마도 시사인 기사.) 
정유정, 김애란 작가의 책을 보고서 우리나라 작가들의 책도 좋구나. 재밌구나. 그동안 일본 엔터테인먼트 소설만 골라 읽던 내 맘 한켠의 무거움을 털어버리려 도서관 사이트에서 찾아 예약해놨다. 그리고 예약했던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있던 어느날 이 책을 찾아가라고 문자가 왔다.


나는 생강을 잘 씹는다. 잘 씹는다고 쓰고나니 좀 우습지만 사실이 그렇다.
언젠가는 오랜만에 온가족이 모여앉아 밥을 먹는데 에잇. 생강씹었다. 잠시후 또 한 번.
엄마는 딱 두 조각 넣은 생강이 왜 다 너에게만 가느냐며 웃으셨다.

 
아무튼 묘하게 나는 생강을 자주 씹는다는 생각에 일단 책 제목을 보고서 정이 갔다. 그리고 '생강'하고 발음 했을 때 입속에 살풋 느껴지는 바람, 왠지 은은한 향기가 날 것도 같은 느낌도 이 책의 첫인상이었다. 하지만 읽고나서의 느낌은 예고없이 덜컥 씹었을 때 입 안에 퍼지는 알싸한 매운 맛. 요리에 풍미를 더한다는 것은 알겠지만 삼키기 싫어 결국은 뱉고야 마는 당혹감과 비슷했다. 제목 그대로 정말 생강같은 책이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천운영 작가의 글은 삼키기가 힘들었지만 다 소화하기 힘들어도 꾸역꾸역 우겨 넣어야 했다.



고문기술자 이근안. 책에서 '안'으로 등장하는 남자. 
실제로 그가 도피한 계기는 이 사건이 아니지만 책에 잠시 등장하는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이 내가 태어나던 1987년, 그리고 그가 자수한 1998년에 나는 겨우 초등학교 6학년 꼬맹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책을 다 읽고 찾아보기 전까지는 그가 실존하는 인물이라고도 생각 못했으니까.
 
출소 후 목사가 되었다 한다. 그리고 글로 써도 되겠냐는 작가의 물음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살고싶다고 했다 한다. 본인은 이 책을 읽었을까. 궁금하다.

이런 사람이 아직도 곳곳에 있기 때문에 설사 콱 씹어버려 당혹스럽더라도 생강이 빠져서는 안 된다.
조금이라도 꼭 들어가 제 몫을 해야한다. 이렇게 생강같은 책이 계속 나와야 하고, 많은 이들이 읽어야 한다.
 


오랜만에 동생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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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선♪
독서일기2011. 7. 25. 19:45
마리아비틀 Mariabeetle - 8점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이영미 옮김/21세기북스(북이십일)
 

상대하는 인간의 감정의 막 같은 것을 언어라는 손톱으로 할퀴는 감각이 왕자는 좋았다. 육체는 단련할 수 있지만, 정신의 근육 트레이닝은 쉽지 않다.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해도 악의의 가시에는 반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52

인간에게는 자기 정당화가 필요하다. 자기는 옳고, 강하고, 가치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자신의 언동이 그런 자기인식과 괴리되었을 때, 그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변명을 찾아낸다.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 바람피우는 성직자, 실추한 정치가, 그들은 하나같이 변명을 구축한다. 128

사과의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상하관계를 만들기 때문에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135

다시 말해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 인간은 무서운 결단이나 윤리에 반하는 판단을 내려야 할 때야말로 집단의 견해에 쉽게 동조하며, 더 나아가 '그것이 옳다'고 확신하는 게 아닐까. 141

"참 나,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확실치도 않아. 정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바보 취급당해. 알아들어? 알코올 중독을 고치는 유일한 방법은 금주를 계속하는 것뿐이야. 한 모금이라도 마시면 끝이니까. 다른 무엇보다 성취감이란 술이나 약으로 얻는 게 아니니 성실하게 일할 수밖에 없어. 편하게 쾌감을 손에 넣으면, 인간의 육체는 의존 형성을 실행해." 148-9

"다시 말해 자기는 무력하다는 학습을 받으면, 조금만 노력해도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인데도 아무것도 안 하게 된다는 거지. 그건 인간도 마찬가지야. 가정폭력도 다를 바 없어. 엄마는 당하는 대로 가만있어. 무력감이 뿌리 깊게 심어져 있기 때문이지." 163

물건을 훔치거나 남을 때리거나 하는 인간에게는 법률이 기능한다. 법조문을 적용해 벌을 주면 끝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훨씬 애매모호한 악의는 간단치가 않다. 법률은 효력이 없다. 235

"인간은 결국 주위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서 행동한다는 거야. 인간은 이성이 아니라 직감으로 행동해. 그러니까 자기 의사로 뭔가를 결단한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주위 사람들에게 자극이나 영향을 받는거지. 나는 독립했다, 오리지널한 존재다, 하고 생각하지만, 그래프를 구성하는 일원에 불과한 거야. 알겠어? 예를 들어 어떤 사람한테 '당신 좋을대로 행동해도 좋다'고 말하면, 그 사람이 가장 먼저 뭘 하는지 알아?"
"알 게 뭐야."
"다른 사람들을 살펴."
왕자는 매우 유쾌한 듯이 말했다. 330

"옛날부터 존재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수하다는 뜻인가봐요. 스톤스도 그렇고, 기무라씨도 마찬가지죠. 살아남았으니 승자에요." 564


 
 
이사카 고타로의 신작. 그래스호퍼와 연결되는 작품이다. 중간에 스즈키, 고래(구지라), 세미(매미) 등이 직접 혹은 대화 속에서 등장한다. 내용 자체는 그래스호퍼를 읽지 않았어도 무방하다. 
그래스호퍼를 읽은지 좀 오래 되어서 가물가물 하지만 이쪽이 훨씬 빠르게, 재미읽게 읽힌다.  


엊그제 차를 타고 오다 우연히 들은 성시경 음악도시에서 영화 평론가로 추정되는 분이 어렸을 때 대부를 보면서 "엄마, 착한 사람은 언제 나와요?" 라고 물었다는데, 이 책도 비슷하다. 온갖 킬러들이 나와서 대결(?)을 한다. 객관적으로 봐서는 하나같이 다 '나쁜 놈들'이지만 바뀌는 시점을 따라 읽다보면 어느새 꼬마기관차 토마스와 친구들 매니아 레몬을, 아들의 복수를 하려는 기무라를, 불행의 여신과 결혼하기 일보 직전의 나나오를 응원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오우지(왕자)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응원불가.) 


이사카 고타로답게 긴장감있고 스피디한 전개 덕분에 읽는 내내 나도 신칸센 열차에 올라타 있는 마냥 (물론 실제로 타보지는 못했지만) 덜컹거리면서도 빠르게 달리는 느낌을 받았다. 달리는 와중에도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한결같은 메세지.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이사카고타로 특유의 메세지가 느껴진다.


살아남은 자가 승자. 결말은 그나마 '덜 나쁜' 자가 살아남았으니 직접 읽으면서 확인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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