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2012. 3. 31. 18:01

실로 오랜만에 CD를 샀다. 공동구매로 한 장 그리고 광화문교보 핫트랙스에서 한 장. 브라운아이즈였나 브라운아이드소울이었나 아무튼 잃어버려서 중고로 한 장 더 산 것 말고는 두 장 구매한 앨범은 처음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공동구매 택배가 곧 도착할테지만 굳이 교보문고에서 한 장을 더 구매한 이유는 뭐랄까. 왠지 모르게 오랜만에 음반을 내 손으로 직접 구매하는 기쁨을 느끼고 싶었달까. 


인터넷 쇼핑이 발달하다 보니 지금은 '구매'라는 개념 자체가 굉장히 추상화 되어있는 기분인데 돈을 내고 물건을 받아오는 행위 자체가 그리웠다. (그러고보니 이왕이면 카드결제 말고 현금을 내고 살걸 그랬네.)


오전 열시 반 쯤 갔더니 아직 도착을 안했다며 11시 반 넘어서 전화해보고 오라고 하기에 근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다 다시 가보니 아직 진열도 안 된 앨범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CD를 샀더니 왠지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10년쯤 전에 단발머리 중학생이던 그 때 친구들과 모여 읍사무소 근처 음반가게에 진을 치고 앉아 "아저씨, god CD 언제 와요? 포스터 꼭 주셔야 해요." 이러면서 기다렸던 것도 새삼 기억나고 말이지. 


앨범이 유독 하얗고 코팅도 안 되어있는 재질이라서 굉장히 신경이 쓰인다. CD개봉하자마자 손 씻으러 갔다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마냥 웃을 일이 아니다. (이건 음반을 소중하게 다루라는 고도의...)

버스커버스커 1집을 보관하는 팬의 자세.jpg


장범준이 직접 디자인 했다는 앙증맞은 캐릭터들과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짓게 만드는 재킷 사진들 덕분에 한장한장 넘겨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Thanks to는 정말이지 오랜만에 봤다. (옛날엔 이 여자이름은 뭐지?!! 설마 여자친구? 이러면서 눈에 불 켜고 봤었는데. 흐흐.)

 

이제는 CD플레이어도 없어 노트북에 CD를 넣고 재생을 해야했다.

여느 영화 OST로 써도 손색이 없을 듯한 인트로 봄바람이 흘러나온다. 정말이지 아련한 느낌을 주는 걸로 순위를 매기자면 버스커버스커가 1등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리고 이어지는 2번 트랙 첫사랑. 시작하는 가사가 '처음'이다. 그 첫 음이, 그 가사가 주는 떨림이 너무 좋아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3번 트랙 여수밤바다. 데모버전이 돌아다닐 때도 밤에 듣기에 너무 좋아서 1분 남짓한 노래를 자기 전 듣는 재생목록에 몇 개씩 추가해놓았었다. 이번 앨범에 들어있다는 소식만으로도 기뻤는데 얼마 전 팬미팅에 갔다가 이 노래를 라이브로 듣고서는 주책맞게 눈물바람을 했지 뭐야.

아무래도 음반이 라이브보다는 감동이 덜하지만 여전히 밤에 잠자리에 누워서 듣기에는 여수밤바다가 최고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누가 밤에 전화해서 이 노래를 불러준다면 사랑에 빠져버리고 말거야.

 

그리고 4번 홈런타자 트랙 벚꽃엔. 시기적으로 정말이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타이틀 선정이다. 날씨가 제법 따뜻해져 방심했다가도 갑자기 찬바람이 정신을 번쩍 차리게하는 요즘이지만 이 노래를 들으면서 눈만 감으면 장소불문 벚꽃잎이 흩날리는 곳이 되어버린다.

너무너무 좋지만 이어폰 한 쪽씩 나누어끼우고 같이 벚꽃놀이 갈 남자친구가 없기에 듣고나면 묘하게 배가 아파진다는 단점이 있는 노래임. 흥.


그리고 선공개되었던 5번 트랙 이상형

이제 버스커버스커의 시그니처가 되어버린 '헤이 브래드' 때문에 걱정도 많이 했지만 이제 마음편하게 엉덩이 들썩들썩하면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쯤에서 길들여지지 마라, 길들여라! '걘역시 노트'가 생각났다. 길들여 지고 있어.)

보통 사람들은 가사를 듣고 엽기적이라며 깜짝깜짝 놀라는 모양인데 역시 아무렇지 않게 들을 수 있는건 그동안 자작곡에 익숙해진 탓이겠지.  

 

그리고 이상형을 정점으로 뒷부분은 살짝 어둡고 쓸쓸한 분위기가 된다.


그 시작인 6번 트랙은 외로움 증폭장치 (브래드 드럼 한판 쉬기).

만우절 날 자취방에 모여 앉아 고개 까딱까딱하며 연주하고 듀엣으로 노래하던 그 영상은 정말이지 100번도 넘게 본 것 같은데 그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는 편곡이라서 참 좋았다. 

이 노래를 들으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은 역시 김형태의 소년같은 목소리와 매치되는 김형태의 교복입은 모습. 그리고 드럼 한판 쉬는 브래드의 휘파람은 Two thumbs up!

'시계태엽 오렌지'라는 영화를 보고서 쓴 가사라니. 영화도 찾아봐야겠다.

 

7번 트랙 골목길과 이어지는 8번 트랙 골목길 어귀에서.

7번 트랙은 '찹쌀떡 장수 : 김지웅' 이 웃음 포인트. 

골목길 어귀에서는 좋은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돌아다니던 음원의 음질때문에 자작곡 중에는 자주 듣지 않았던 노래였는데, 이제 정말이지 마음껏 들을 수 있겠다. 좋아. 

 이 노래는 왜 들을 때 마다 장범준 특유의 그 발동작들이 생각나는지 이유를 모르겠네.

 

 9번 트랙 전활 거네. 이것도 음질이 안 좋아서 잘 안들었던 노래로구나. 

나만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떠나왔지만 결국 잊지못해 전화를 걸 수 밖에 없는 심정이라니.

글쎄 난 그래본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이번 앨범에서 씁쓸한 느낌으로는 이 노래가 제일이다.

 

10번 트랙은 어두워진 분위기를 살짝 반전시키는 꽃송이가

좋아좋아 멜로디언 쏠로! 도 좋았지만 하모니카 쏠로! 도 좋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을 담아 목청높여 열심히 부르는 청년. 확실히 김형태가 주는 '소년' 분위기와는 다르게 장범준은 청춘이고 청년이야.

  

11번 트랙 향수. 마지막 가사가


너무 좋아 아아아아 아아아아아 아아아 아아아아

허오오오 오오 허오오 오오오 허오

 

그래 나도 좋다. 이렇게 좋은데 마지막 트랙이라는 이유로 음원순위에서 (상대적으로)하위권이라니 이 안타까운 마음을 어찌다 표현하리.  

둥가둥가(?)로 시작하던 도입부 없이 바로 가사로 들어가버려서 조금은 아쉽지만 그렇지 이제 길들여져 버렸다. 장범준 니가 조련神이다.

 

그리고 그 다음 트랙은 봄바람. (무한 반복이다. 이 앨범의 마지막 트랙은 없ㅋ엉ㅋ.)

 

 

뭐랄까. 어느 트랙 하나 빼놓을 수 없이 밸런스가 좋고 따로 떼어 놔도 명곡이다. 팬미팅 때 서슴없이 이번 우리 앨범 명반이에요. 라고 말하던 장범준의 자신감은 역시 근거 있는 자신감이었다.

커버곡과 여러 버전까지 포함해서 100개가 넘는 데모음원이 돌아다녔기에 모든 것이 다 실릴 수는 없었지만 그래서 아쉬운 것이 아니라 그래, 봄에는 이런 노래란 말이지? 그렇다면 이들이 다른 계절에 하는 노래는 어떨까 궁금해진다. 50살 되어 여수밤바다를 부르고 있을 본인의 모습을 이미 생각하고 있다니 이들이 앞으로도 계속 좋은 음악을 들려줄거라는 확신이 생긴다.

 

 

이렇게 구구절절히 모든 트랙에 코멘트를 단 이유는 굳이 음반을 사지 않고 음원만 구매하더라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앨범 전체를 들어보았으면 하는 바람때문이다. (뭐 이미 타이틀 말고도 많은 곡들이 음원차트 상위권에 장기집권할 태세지만.)

  

사실 이 음반을 만나기 직전까지 CD 구매는 고사하고 이제 더이상 음원을 저장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든 생각나는 노래는 스트리밍해서 들으면 되는 시대가 되었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오랜만에 음반을 사서 들으니 역시 통으로 듣는 즐거움이 있고, 좋아하는 뮤지션의 CD를 소유하는 즐거움을 무시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요즘은 정규앨범 자체도 흔하지 않을 뿐더러 CD를 사야겠다는 마음이 들만큼 좋은 가수가 많지 않으니. (그런데 버스커버스커 1집은 10대들에게는 생애 처음 구매하는 앨범, 20대 이상에게는 오랜만에 구매하는 앨범으로 유명하다지?)


두 장의 앨범 중 하나는 막내동생에게 보내주려 했는데 동생 친구도 갖고 싶다하니 어떻게 이를 어째야 하나. 커피 몇 잔 안 마신다 생각하고 한 장 더 사서 보내줘야겠다. 지금 오프라인 매장은 들어오자마자 매진되는 상태라하니 한 장 더 구하려면 시간이 꽤나 걸리겠지만.

  


그리고 음반을 구매한 팬들을 위한 작은 선물? 이스터 에그랄까? 이런게 있다.

색깔이 다른 글자를 순서대로 읽으면

 

        나랑 노래불러 다시 노래불러 둘이서 랄라라 

        

이 것 말고도 그대는 아나요 난 너 좋아요   난 이 향기를 맡아 도 숨어있으니 

궁금한 분은 CD 사서 찾아보시라.   



이상 리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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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선♪
좋아요2011. 11. 12. 21:48


사진 출처 : 슈퍼스타K 방송화면 캡처

이토록 멋지고 아름다운 2등이 또 있을까.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던 결과였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했다. 버스커버스커 본인들도 이미 수많은 인터뷰에서 우승에 기대가 없음을 밝히고 있고, 심지어 순서선택권을 손에 쥐고서 주인공이 뒤에 하는 거라며 본인들이 앞에 서고 울랄라세션 공연을 뒤에 배치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잘했다. 어떤 이들은 너무 뻔해서 재미가 없다고들 말하지만, 버스커버스커가 ‘서울사람들’을 이만큼 잘 뽑아내지 않았다면 결단코 지금만큼 흥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 방송 최고 시청률을 찍은 부분이 버스커버스커가 ‘서울사람들’을 부를 때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뻔했던 승부를 축제로 만드는데 버스커버스커가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번 전문가 선곡을 위한 VCR촬영에 다녀온 것을 계기로 이번 생방송 무대를 현장에서 보게되었다. (기꺼이 촬영에 협조했던 사람들을 끝까지 유린한 제작진의 횡포는 내 언젠가 꼭 성토하고 말리라.) 현장에서도 확연히 느껴졌던 함성의 차이. 그렇지만 버스커버스커는 남의 잔치에 온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아니라 즐거운 경쟁자의 위치를 잃지 않았다. 욕심을 내려놓고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 멋진 모습이었다. 승부에 허덕이지 않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좋았다. ‘너무’ 뒤에는 부정적인 말이 와야 하니 어법에는 맞지 않지만 달리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포기 대신에 초심으로 돌아왔다. 김도현의 표현에 따르면 10% 모자르다는 장범준은 사실 맹구를 가장한 천재일지도 모르겠다.(어쩌면 실질적으로 장범준을 조종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있는 김형태가 천재일지도.) 버스커버스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들의 어떤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길거리 공연할 때 항상 안고 다니며 연주하던, 때 묻은 스티커가 붙어있는 통기타가 클로즈업되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 순간만큼은 더 화려하고 더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는 어떤 기타보다도 더 멋진 기타였다. 영리하다. 팬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포인트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시작하자마자 마음 찡하게 만든 문제의 그 기타. (근데 또 소리 안 나올까봐 조마조마했던건 나뿐인가?)




이 밴드의 창의성과 공감의 코드는 이번 무대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본인들 경연만으로도 정신없는 와중에 서울사람들이 잠이 없고 피곤하겠다는 생각까지 하다니.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특한' 밴드다.  ‘완전 타이얼드’ 라는 소박한 발음의 가사. 많은 사람이 공감했으리라 생각한다. 우승내기는 울랄라세션에 걸었다는 친구가 서울사람들 가사에 완전히 공감했다고 할 정도니까. 음원으로 꼭 출시되기를 바란다. (더불어 작사가로 저작권료 좀 챙겼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 누나가 음원 사주께. 150곡 쿠폰 말고 제 돈 다 주고 사주께.)


또 하나, 버스커버스커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그들의 자작곡. 팬들 사이에서는 내심 결승무대에서 자작곡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비록 자작곡 무대를 선보이지는 못했지만 (광주 공연에서 보여준 자작곡도 전파는 못탔다) 대신 팬들의 바람은 I believe 후렴구에서 조금이나마 충족된다.

 


순서대로 앞이 자작곡인 향수, 뒤는 이번에 보여준 I believe의 일부이다.


이건 보너스.
앞은 자작곡 니 옆에 그사람은 정상이 아니야의 도입부,
뒤는 어쩌다 마주친 그대의 도입부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쏠쏠한 관전 포인트.
(안 되는 실력에 편집하느라 공 좀 들였다.)

 



팬들의 이런 바람까지 미약하나마 이루어지니 참으로 기쁘다. 이렇게 깜찍한 무대라니. 보는 이로서도 즐겁지 않을 이유가 없다. 너희 덕분에 우승팀의 앵콜무대에 기쁜 마음으로 박수 쳐줄 수 있었고, 방송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그 새벽에 덜덜 떨면서 택시잡느라 한참을 고생했어도 즐겁게 돌아올 수 있었노라고 옆에 있으면 등이라도 토닥토닥 두드려주고 싶은 마음이다.


 

형태 형 따라오니라 수고했다


윤택이 형, 더러운 우리랑 살아줘서 고마워영ㅋ





‘서울사람들’ 곡을 들은 장범준이 작사를 해보겠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표현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장범준이 작곡가의 곡을 듣고 표현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처럼, 팬인 나도 버스커버스커의 노래를 듣는 순간, 이 즐거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이 이런 글을 쓰게 되는 동력이 된다. ‘나는 가수다’가 흥행에 성공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실력있는 가수들의 공연이 다른 사람들과 그 느낌을 나누고 싶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었는가.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들이 앨범을 내고 가수로 데뷔한다면 반드시 잘되리라 생각한다. 분명히 파급력이 있고 확장성이 있는 뮤지션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될 버스커버스커가 너무나 기대가 된다. ‘I Believe' 다.

 

 





 

 

Posted by 유선♪
좋아요2011. 11. 1. 16:28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처음으로 보고 말았다.


영화 허니와 클로버에 나오는 대사이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라니. 그 단어가 주는 끌림에 홀딱 반해서 그 이후로는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면 언제 좋아하게 되었는지를 곰곰히 생각해보고 마음에 담아두는 버릇이 생겼다. 예를 들면 눈치 없이 자기 말만 하는 친구를 피해 딴 생각을 하다 다른 친구와 눈이 마주친 순간, 눈을 반달모양으로 만들며 웃는 누군가의 사진을 본 그 날, 내가 부르는 소리에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나를 쳐다보는 우리집 강아지와 눈이 마주친 그 순간. 뭐 그런거. 생각해보면 좋아하는 감정이란 건 의외의 순간에 언제나 갑자기, 별다른 이유없이 다가온다.


버스커버스커에 관심을 가지게 된 순간을 떠올려 봤다. 언제였을까. 생각이 났다.

Livin' la vida loca 생방송 무대. 흥미롭게도 발음 때문에 김치마틴이라는 별명과 노래하다 침까지 흘려서 침범준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바로 그 무대다. 사실 그 전까지는 이 팀에 관심도 없었다. 탑11이 되었을 때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고, 동경소녀 무대에 기타소리가 안 난 것도,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석연찮은 표정으로 노래를 마치고 내려온 것도 그때는 몰랐을 정도로. 음원이 대박났다길래 그런가 보다 하고 들어보지도 않았으니까.


Livin' la vida loca를 부른다고 하길래 노래 시작도 안했는데 내심 '이 팀 떨어지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다년간 오디션 프로그램을 애청해온 내 나름의 무학(無學)의 통찰에 의하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피해야 할 종류의 곡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그룹의 노래를 혼자서 부르는 것, 특히나 세밀하게 파트가 분할되어있고 쉴틈없이 치고 나오는 아이돌 그룹의 노래. (그래서 신지수가 '길'을 부른다고 하길래 '아, 안되는데' 라고 생각했었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김태우 노래도 여간해선 좋은 반응을 얻기 어려운 것 같고, 박진영의 스윙베이비는 어디선가 박진영 본인이 이 노래는 오디션에서 부르면 안된다는 얘기를 했던게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대충 공통점을 찾자면 원곡만큼 노래의 맛을 살리기가 쉽지 않은 노래 정도로 요약이 되려나.
 
Livin' la vida loca도 그런 곡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너무 유명하지 않은가. 후렴구도 코러스 감안하더라도 쉴새없이 불러야 하고. 게다가 보컬 본인이 영어노래 잘 모르는데 이 노래는 안다고 말하는 순간 '아는 노래가 이거밖에 없어서 선곡한 건가?' 하는 생각과 함께 내 머리속에서는 벌써 탈락까지 갔다. 

그런데 어라? 막상 노래가 시작되니 나름대로 괜찮은 거다. 그래서 이 팀에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 번 본 영상을 보고 또 보고 하는데, 보컬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표정. 이 무대 도입부를 자세히 들어보면 '아, 안나오는데' 하는 소리가 들린다. 동경소녀 때도 그러더니 이 때도 초반부에는 기타소리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소리가 나기 시작하고, 기타소리가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런 표정을 지어보인다.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밌는 아이의 표정이었다. 저렇게 해맑은 미소를 봤던게 언제였던가. (발캡처, 영상으로 봤을 때 내가 느낀 그 정확한 표정을 못 찝어내겠다. 엉엉) 




이건 리빈라비다 로카 아아아- 할 때 표정. 너무 열심히 부른 나머지 침까지 흘린 직후다.


발음도 엉망이고(츀키츀키 모카는 뭐냐.) 혹자가 에라 모르겠다라고 표현했던 삑사리도 냈으면서, 뒤로 갈수록 마구마구 빨라져서 드럼 속도에 따라가기 바쁘면서 너무너무 신나 죽겠다는 이 표정은 뭘까. 너무 부러웠다. 내가 이제껏 찾지 못한 무언가를 스물 세 살의 저 아이는 이미 찾았고,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바로 이 순간을 즐기고 있다는 데 까지 생각이 미치자 저 녀석이 미친듯이 부러워졌다. 그리고 그 때부터 닥치는 대로 이들에 대한 정보를 찾아 모았다.


더 알아낼수록 흥미로웠다. 지역예술을 걱정하는 기특한 청년, 놀라운 그림솜씨, 지금 당장 앨범하나 뚝딱 만들고도 남을 정도의 자작곡 레퍼토리. 흔적을 따라가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몇 년만에 팬까페에 가입해있고, 음원을 다운 받아 무한루프하고 있고, 자작곡 멜로디를 흥얼거리면서 다음 방송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번 들어오니 출구가 없다. 큰일이다.


이 그룹이 20대에게 특히 인기가 많은 이유는 이런점 때문이 아닐까. 나는 어렸을 때는 공부만 잘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면 앞길이 술술 열릴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점수에 맞춰서,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온 대학을 졸업 할 때가 되어보니 우리를 수식하는 말은 '88만원 세대'다. 남보다 나은, 남에게 인정받을 만한 무언가를 이루려 달려오다 보니 정작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뭐가 되고 싶은지는 잊어버렸다. 아니 그런걸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남들 하는대로,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엔 다 이유가 있겠거니 하면서 어영부영 다른 사람 뒤를 똑같이 따라갔다.

그런데 이 청년들은 나와는 다르다.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데 잘하기 까지 한다. 그리고 본인이 충분히 즐기고 있다. 나는 현실에 매여 아둥바둥하고 있는데 이들은 현실을 초월한 것 처럼 보인다. 그래서 청년 사업 기획서를 아이디어로 빼곡히 채울 수 있는 장범준이 너무너무 부럽다. 드러머가 되겠다며 강사자리를 내어 놓을 수 있는 브래드의 용기가 부럽다. 베이스 하지 않을래 라는 권유에 흔쾌히 그러자고 승낙할 수 있는 김형태가 부럽다. 부러워서 질투가 날 지경이다.

동시에 나는 이들의 지금 모습을 지켜주고 싶다. 그저 TV로 보고, 노래를 듣는 팬의 한 명일 뿐인 내가 이런 말을 하는게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지켜주고 싶다. 이들이 지금 모습을 잃어버릴까봐 걱정이 된다. 자꾸 우승은 안 했으면 좋겠다. 여기까지 올라온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는 몇몇 팬들의 발언은 이런 걱정에서 나오는것이라 생각한다. 



쓰다보니 이야기가 산으로 간 감이 있지만,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그들이 이자리까지 올라온 것은 단순히 운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굉장한 편곡실력은 고3 때부터 차근차근히 쌓아온 자작곡 레퍼토리가 있기 때문에 빛을 발하는 것이고 (아마추어 밴드가 이정도로 탄탄한 자작곡 레퍼토리가 있는 것은 흔치 않을것이다), 아침 일찍부터 새벽까지 하루 종일 버스킹을 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무대 위에서 돌발 상황이 닥치더라도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막걸리나 무대를 기점으로 팬들사이에서 장범준은 천재인것 같다는 말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하지만 나는 천재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굉장히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칭찬은 되려 독이 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팀은 엄청난 노력을 기반으로 도약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없지만 밤새워 연습하던 그날들의 노력이 지금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막걸리나' 보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 무대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흘간이나 드라마 촬영을 해서 연습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완성도 높기로 유명한 곡을 나름대로 잘 편곡하고, 원곡에 없던 멜로디라인까지 만들어서 삽입하고, 밴드 호흡까지 잘 맞추어 낸다. 이건 천재라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기본기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이 팀이 정말 잘 되길 바란다. 음악적으로 발전하는 동시에 팀의 개성도 잃지 않기를 바란다. 대중문화에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가길 바란다. 진정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다른 사람에게도 용기를 주길 바란다. 그 성공이 프로그램 우승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방송 이후의 길을 말하는 것이다. 경연에서 보여주는 커버곡이 아니라 진짜 이들의 언어로 된 노래로 가득한 앨범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이미 많은 사람들은 그들을 사랑해줄 준비가 되어있다.


Posted by 유선♪
좋아요2011. 10. 30. 18:17


드디어 터졌다. 실력이? 포텐이? 아니 심사평이.

막걸리나가 이전 무대와 비교해서 선곡이 좋았다거나 실력이 월등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 무대가 이토록 칭찬을 받는 이유는 그동안 심사위원들이 인정하지 않았던 그들의 무대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내가 생각하기에 버스커버스커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포인트와 버스커버스커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포인트는 일치한다고 본다. 완벽하지 않음, 미묘하게 어긋나는 코드진행, 흥분해서 빨라지는 비트, 아직도 묻어나는 아마추어적인 색깔. 어떤 사람들은 그런 면에서 매력을 느끼고서 팬이 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런 점이 못마땅해 비판을 한다. 이제까지 슈퍼스타K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이 후자 쪽이었다면 이번 막걸리나 무대를 기점으로 전자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특히 같이 작업해본 윤종신 심사위원은 완전히 전자 쪽으로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그 유명하다는 종신보험 가입?!)


윤종신 심사위원은 스스로 ‘고리타분하게 봤던 것 같다’고 인정하면서 장범준군의 창의성이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고, 자신의 곡을 더 좋게 바꿔주어서 고맙다며 98점이라는 (전체적으로 점수가 짠 윤종신으로써는) 이례적인 높은 점수를 주었다. 이 방송을 보면서 윤종신이 높은 점수를 준 것보다도 더 놀라웠던 것은 스스로 반성한다는 말, 프로듀서 그리고 가수로써 상당한 지위를 가지고 있음에도 이제 막 대중에게 한걸음 다가선 초짜밴드에게 내 곡보다 더 좋게 만들어주어서 고맙다고 칭찬하는 윤종신의 소탈하고 솔직한 발언이었다. 방송을 떠나서 인간적으로 본받을만한 훌륭한 사람이구나, 열린 사람이구나. 새삼 생각했다.



사실 이번 미션곡이 막걸리나라는 스포일러가 방송 며칠 전부터 돌았다. 반응이 엄청났다. 많은 사람들이 굉장히 우려를 했고 소수의 어떤 사람들은 해당 심사위원에 대한 비난까지 서슴지 않았다. 과열되는 분위기가 걷잡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나는 윤종신 노래를 전부터 좋아하는 편인데다 막걸리나 자체가 재미있는 곡이고 장범준의 편곡실력이라면 신나게 잘 편곡할 것 같아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괜찮을 것 같다는 요지의 글을 한 커뮤니티에 썼다가 뭐가 괜찮냐는 타박을 듣고 충격을 받기도 했다. (물론 우려하는 의견도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모 CF에 삽입되었던 곡이고 가사에 진중함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니까. 다만 무조건 진중하고 무게감이 있어야 멋있고 그래야 예술이라는 생각이라면 난 절대 반대다.)



어찌됐든 생방송 무대는 성공적이었다. 역시 장범준의 편곡실력에 대한 믿음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냉담했던 이승철 심사위원과 윤종신 심사위원한테서 극찬을 받고, D모 커뮤니티에서 장범준은 장편곡이라는 별명을 획득할 정도였으니까. 역시 버스커버스커다운 무대였고, '거품이다.' '인기로 겨우 살아남았다.' 는 비판에 보기좋게 강펀치를 날려 주었다. 특히나 재밌고 즐거운 버스커버스커의 무대에 이어 비장하면서도 웅장했던 울랄라세션의 무대가 어우러지면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도 시너지효과를 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번주 생방송 무대의 결과가 갈린 것은 네 팀 다 썩 잘된 선곡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보여준 팀과 그렇지 못한 팀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대체 이 허술해보이는 세 청년이 이토록 승승장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이유가 방송에서 윤종신 심사위원도 언급한 바 있는 창의성, 자신감 그리고 무대를 즐기는 마음 정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버스커버스커의 자작곡을 듣다보면 음악적 소양이 없는 평범한 내가 들어도 ‘어? 뭐지?’ 하는 생각이 들만큼 자연스럽지 못한 코드진행이 있을 때도 있다. 그게 의도적인지, 실수인지는 모르겠지만 신기하게도 그게 나쁘지가 않다. 이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방송에서 보면 윤종신 심사위원이 장범준이 코드를 ‘틀리게’ 따왔다고 표현한다. 그런데도 그게 나쁘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10월 29일 '오늘 아침 심현보입니다' 에 출연한 김광진씨는 버스커버스커의 동경소녀에 대한 언급 중에 ‘코드를 원곡과 다르게 따왔더라구요’ 라고 표현한다. 그러면서 편곡을 잘해왔다고 칭찬을 했다. (김광진의 이 말 한마디에 감동받은 장범준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었다고 한다. 방송에서는 1초만에 지나가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울었는지조차 모른채 넘어갔지만.) 같은 팀 멤버인 김형태가 “원곡을 안 듣고 해요.” 라고 방송에서 말한 바도 있다. 물론 원곡을 전혀 안 듣는 것은 아닐거다. (일단 무슨 노래인지는 알아야 할테니까.) 그런데 그걸 자기가 부를 때는 일단 자기식으로 해석해버리는 장범준의 창의성은 그대로 버스커버스커의 색깔이 된다. 이쯤되면 거의 ‘장범준 필터’ 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다. (그에게 있어 음악은 본인의 감성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라는 점에서 미술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렇게 자기 색깔이 너무 강하다보면 다른 사람이 듣기에 거북해질 위험성이 있는데 그런 우려는 김형태라는 멤버가 있어서 어느정도 해소가 된다. 팀원 중 가장 어리고 마냥 귀여워 보이는 이 청년이 의외로 곡 전체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고 형한테도 할 말은 꼬박꼬박 다 한다. (심사위원이 자기 팀 리더한테 혹평을 하고 있는데도 틀린 말 하는게 아니라며 끄덕끄덕 하고있다.) 재밌게도 팀에서 가장 어린 김형태가 장범준의 자유분방함과 신나면 빨라지는 드러머 브래드를 조율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 같다.


할 말은 하는 형태. 바로 수긍하는 범준.


그동안의 무대에서는 자신감 없는 모습이었다는 이번주 윤미래 심사위원의 심사평에 난 고개를 갸우뚱했었다. 어느 부분이 자신감이 없다는 건지 찾을 수가 없었으니까. (자신감 없는 사람이 노래하다 갑자기 뛰어나와서 안경을 던질 리가.) 오히려 이 팀은 굉장히 자신감과 자부심이 충만하다고 본다. 오디션프로에 나온 참가자들의 탈락수순 중 가장 안타까운 것이 심사위원의 지적 → 고치려고 노력 → 잘 안됨 → 자신감 하락 → 결국 자기 본모습마저 잃어버리고 탈락. 이 과정이다. 지적을 고치느라 자기 색을 잃어버린채 탈락해도 심사위원은 책임져 주지 않는다. (예를들자면 위대한 탄생 시즌1에서 참가자 조형우가 끝끝내 '클럽에도 가는 교회오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이런 수순으로 탈락해버려서 굉장히 아쉬웠다.) 버스커버스커는 끊임없이 리드보컬에 대한 지적을 받아왔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결국 팀 색깔과 창의성으로 이를 극복해낸다. 팀 사운드와 자신들의 개성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면 이는 결코 불가능했으리라. 대 선배인 원곡자 윤종신에게 "어, 그 부분 좋은데요? 그녀가 나를 사랑해" 라고 말 할 수 있는건 자신감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다.



버스커버스커는 무대매너가 굉장히 좋고 스스로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기타소리 안 나와서 당황했던 동경소녀 무대만 제외다.) 이는 보는 이에게 즐거움과 안정감을 준다. 처음엔 거리공연을 많이 해서 경험으로 체득했나보다 했는데, 고등학교 축제 때 동영상을 보고 ‘아, 이건 타고났구나’ 하고 생각했다. 고등학생이 무대 위에서 “가까이 오세요. 할 말이 있어서 그래요.” 라니. 이건 타고난거다. 특히나 이번 막걸리나 무대에서는 “아하하” 하는 장범준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새로 산 기타(무려 화이트 팔콘)를 자랑하듯 신나게 연주하고서 사운드에 만족한 듯이 아하하, 귀여운 손동작까지 곁들인 랩을 하고서 아하하, 헤이 누나~ 하고서 또 아하하. 브래드의 막걸리 가자에 이어 아하하. 일부러 넣으려 해도 이렇게는 못할거다. 너무너무 즐겁고 좋아서 죽겠다는 그 웃음소리는 드럼, 베이스, 기타에 이어 이들의 네 번째 악기가 되었다. 월요일날 출시될 음원에서는 웃음소리가 빠지겠구나 생각하니 벌써부터 아쉬워질 지경이다. (수정 : 이글 쓸 때는 당연히 음원에서는 웃음소리가 빠질거라 예상하고 이렇게 썼는데 음원에 깨알같이 웃음소리도 들어갔다. 음원녹음팀 땡큐베리감사해요.엉엉)


새로 산 기타에도 깨알 같은 시그니처 B




버스커버스커를 보고 있으면 ‘아, 얘들은 진짜구나. 진짜 즐겁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누군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곤 하는데, 버스커버스커 노래는 분명히 신나는 노래인데도 반복해 듣다보면 자주 울컥하곤 한다. 말로는 설명 못할 마음 한켠을 건드리는 음악이다. 혹자는 이런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연주도 보컬도 빼어나지 않는데 왜 이런 인기를 얻는지 모르겠다고 평할 수 있다. 하지만 보컬이 빼어나지 않더라도 공감할 수 있는 감성에 반해 많은 사람들이 인디음악을 사랑하는 것처럼 나는 그들의 감성이 마음에 든다. 지금 이순간이 너무 즐겁고 신나죽겠다는 그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어떻게 함께 즐겁지 않을 수 있겠냐고 생각한다. 그리고 팬으로써 이들의 음악이 발전하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이 감성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슈퍼스타K 음원녹음을 담당하는 김지웅씨가 자기는 버스커버스커 음악을 들을수록 이들에게 ‘기본과 정석’을 가르쳐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고 하고, 보컬코치 박선주씨는 클래식이 아닌 대중음악이라면 화성악이라는게 꼭 필요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코멘트 했다. 전문가들로 하여금 그들이 기본 전제라고 생각해왔던 것을 다시 한 번 의심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팀.
이 팀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계속 보고 싶다.




Posted by 유선♪
좋아요2011. 10. 12. 21:51

작년까지는 사람들이 왜그리 슈스케슈스케 하는지 이해 못하고 괜히 '흥 난 안봐' 모드로 일관해 왔으나. 올해는 그 마성에 나도 빠져들고 말았으니...

인터넷 다시보기로 꼼꼼히 보고서 이번주 월요일에는 음원나오기를 기다렸다가 마음에 드는 곡 몇 곡 받아서 들었는데, 왠지 모르게 동경소녀와 Livin' la vida loca를 무한루프하고있는 나를 발견했다. 계속 듣다보니 중독된다. 무섭다. 마성의 목소리다. 


그 주인공은 바로바로


버스커버스커.


보컬겸 기타를 맡고있는 리더 장범준, 베이스(와 멜로디언을 담당하기도 하는) 김형태, 드럼 브래드로 구성된 밴드이다.  장범준과 김형태는 상명대 재학중인 대학생, 드러머 브래드는 동 대학교 강사 되시겠다. 사제지간이라는 특수한 구성이다.

사실, 이제껏 나는 투개월에 더 꽂혀있던 터라 버스커버스커에 대해서는 그냥 '베이스 치는 애 귀엽네' 정도의 생각만 잠시 했을뿐. 그런데 지난주 음원 1등이라는 말에 호기심이 일어 다운받아 듣고나니 마음이 달라졌다.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은게 나뿐만은 아닌지 이들은 이승철에게 보컬에 대해 혹독한 지적과 낮은 심사점수를 받았음에도 슈스케 홈페이지의 온라인 투표에서 투개월에 울라라세션까지 제치며 2주연속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런 것도 인기의 척도인가. 흐흐
(사진출처: twitter @MnetSuperstarK @maraboro39)




이들은 이미 천안에서 정기적으로 공연도 해왔고 대외 활동을 많이 해서 과거(?)가 많이 공개된 편인데, 이전의 많은 출연자들이 과거가 '털려' 구설수에 올랐던 것과는 다르게 이들은 깔수록 훈훈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청년들 같으니. 지역문화가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한 다큐멘터리에서의 발언은 자못 진지하고 대견스럽다. 어린친구가 대견스러운 말을 한다는 VJ의 말에 웃으며 우리 엄마도 나를 믿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지금은 충분히 대견해하시지 않을까나.


굳이 이들의 캐릭터를 분류하자면 일단 '카리스마 팍팍 발산하는 멋진 오빠들' 타입은 아니고, 전체적으로 친근하고 편한 동네오빠 스타일이다.(라고는 쓰지만 브래드빼고는 오빠도 아닐뿐더러 우리동네엔 이런 오빠들 없어ㅠㅠ) '소름돋게 잘하는 맛' 은 없지만 열심히, 즐겁게, 흥겹게 노래하는 모습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특히 Livin' la vida loca 생방송무대 초반에 안 나오던 기타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신나게 연주하는 그 모습은 표정만으로도 보는사람 마음을 설레게한다. 


투개월이랑 줄리엣 준비할 때 예림이 위주로 거의 양보하는 걸 보고 오디션 프로에 나와서 뭐 저렇게 욕심없이 다 양보하나, 리더 저녀석은 예림이 예쁘다더니 홀랑빠져서 간 쓸개 다 빼주나 하고 생각했는데 이런저런 과거영상과, 본선에서 보여주는 모습, 인터뷰 등을 보니 딱히 예림이가 마음에 들어서였다기 보다는 상대가 누구라도 양보했을 용자로 생각된다. 떨어져도 기꺼이 상대에게 축하의 박수를 쳐주고, 기타소리가 나오질 않아 당황함이 역력한 모습으로 공연을 했음에도 핑계 한 마디 안 한다. 그런점이 굉장한 매력포인트로 작용하는 것 같다. 어떻게 스물 셋 밖에 안 먹은 청년이 저렇게까지 승패에 초연할 수 있는지 궁금해져서 자꾸자꾸 보게된다. 특히 장범준은 굉장히 앳띤 소년의 미소를 가진 것과는 다르게 중년의 어르신 느낌의 '전라도 토박이 사투리'를 구사하고, 마음 한켠을 건드리는 쓸쓸한 목소리로 노래한다. 

장범준은 헌팅캡만 고집하더니, 드디어 모자를 벗었다.
(모자 벗은 것만으로도 화제가 되다니.)



슈스케 원어민 선생님 니콜라스 케이지. 브래드. 수트간지 빵간지.




지난번 생방송에서 드러머 브래드의 목소리가 노래에 살짝 더해졌는데, 유투브 영상을 보니 베이스치는 김형태도 괜찮은 목소리를 가졌고, 장범준과 둘이 화음을 맞춰 노래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슈스케 생방송 무대에서도 둘의 화음을 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






토끼형태. 쿰대. 사진엔 웃어서 잘 안나오지만 오른쪽 눈이 더 크다. 비대칭도 매력이다.
(사진 출처는 각 사진에 나온대로.)





이리저리 찾아본 바에 의하면 버스커버스커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하던 멤버는 방송 출연중인 셋보다 훨씬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하나의 팀이라기 보다는 공연공동체 같은 느낌이고, 지금의 팀은 슈스케 출연을 위해 꾸린 유닛정도로 생각된다.

이들의 네이버카페에 천안에서 공연할 당시 만들어 놓은 자작곡들이 올라와있어서 그 음원이 제법 퍼진 모양인데, 이 자작곡들에 대한 반응도 대체로 호의적이다. (지금은 다운을 막아놓았지만, 스트리밍으로는 감상 가능하고, 또 약간의 우회적인 방법을 쓰면 소장도 가능한 모양이다.)

대부분이 '여자 꼬시는 노래' 라는 자작곡들은 범상치 않은 단어선택과 활동지역을 기반으로 한 가사가 포인트다.
예선에서 부르기도 했던 이상형(못생긴여자)의 가사에는 아홉번째 척추라던지, 오장육부같은 단어가 등장하고, '천안의 명동'격이라는 야우리로 놀러가자는 '야우리송' 같은 노래도 있다. (고향이 천안인 지인에게 야우리송이 있다니까 굉장히 좋아하더라.) 프로같이 완성도가 높지는 않지만 입에 금방 붙어 흥얼거리게 된다.

자작곡을 몇 곡 들어보니 벌써부터 이들이 슈스케 이후에 내게될 음반이 기대가 되고, 천안에서 해오던 이들의 활동이 앞으로는 전국적으로 펼쳐지리란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이들이 앞으로 몇번째 생방송에서 떨어진다 한들 즐겁게 다음행보를 기다리겠다. (물론 순위는 높을수록 좋겠지만)


아무튼 오랜만에 '마음을 줄만한' 뮤지션을 만났다.



 

Posted by 유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