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2011. 7. 3. 20:39
완득이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청소년소설
지은이 김려령 (창비,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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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키가 작으면 모두 어린애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18

정황상 나는 가출을 해야 했다. 출생의 비밀을 알았습니다. 잠시 혼자 있고싶어 떠납니다, 라고 쓴 쪽지 하나 남겨 놓고 떠나야 했다. 그런데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사람들이 먼저 떠나버렸다. 잘못하면 가출하고 돌아와 내가 쓴 쪽지를 내가 읽게 될 확률이 높았다. 어떻게 된 집이 가출마저 원천봉쇄해놓았는지. 돌아다니다 돌아다니다 혼자 있고 싶어서 온 곳이 결국 집이었다. 43

준호가 정말 저질이었을까. 멍청한 자식, 왜 들켜서는. 나중에 준호가 유명한 성인만화가가 되면 빌려보지 말고 한 권 사줘야겠다. 92

나는 싸움을 싫어한다.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놀리지만 않았다면 싸우지 않았다. 그건 싸움이 아니었다. 상대가 말로 내 가슴에 있는 무언가를 건드렸고, 나도 똑같이 말로 건드릴 자신이 없어 손으로 발로 건드렸을 뿐이다. 상처가 아물면 상대는 다시 뛰어다녔지만 나는 가슴에 뜨거운 말이 쌓이고 쌓였다. 122

"한 번, 한 번이 쪽팔린 거야. 싸가지 없는 놈들이야 남의 약점 가지고 계속 놀려먹는다만, 그런 놈들은 상대 안 하면 돼. 니가 속에 숨겨놓으니까, 너 대신 누가 그걸 들추면 상처가 되는 거야. 상처 되기 싫으면 그냥 그렇다고 니 입으로 먼저 말해버려." 136-7

장애라는 말에 아버지 어깨가 잠시 흔들렸다.
사람한테는 죽을 때까지 적응 안 되는 말이 있다. 들을수록 더 듣기 싫고 미치도록 적응 안 되는 말 말이다. 한두 번 들어본 말도 아닌데, 하고 쉽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가슴을 치는 말은 한 번 두 번 세 번이 쌓여 뭉텅이로 가슴을 짓누른다. 196

아버지와 내가 가지고 있던 열등감. 이 열등감이 아버지를 키웠을 테고 이제 나도 키울 것이다. 열등감 이 녀석, 은근히 사람 노력하게 만든다.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영 나쁜 것 같지도 않은 게 딱 똥주다. 204



남들 다들 '걸오앓이' 할 때 나는 그게 뭔지도 모른채 지나갔다가
뒤늦게 성균관 스캔들을 보고서 '걸오앓이'를 된통 하고 있다.

아무튼 그 걸오, 배우 유아인이 '완득이'라는 영화를 찍었다기에
이리저리 찾아보다가 원작 책이 있다고 해서 곧장 도서관으로 향했다.


우리나라 작가의 책을 읽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일부러 안 읽는다거나 피한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도 일본소설 쪽이 더 '재미'가 있어서
자연스레 그 쪽만 읽게 되었달까.

그런데 김려령 작가의 완득이. 재미있다.
그리고 재미있는 와중에 생각해볼만한 문제도 살풋 담겨있다.
어렵지 않게,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게.


내 주변에도 있었다. '난쟁이'인 동급생.
소설 속 완득이와는 달리 실제의 그 친구네 집은 엄마도, 딸도, 아들도 '난쟁이'였다.

한 번도 같은 반이 된 적은 없었지만 내가 그 아이의 이름을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는 건
그 아이와 같은 학교를 다니기 전,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어느 날의 일 때문이다.

내가 다니던 학교와 옆 학교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있었다.  
우리학교 쪽이 지대가 높은 탓에 학교 가는길 아래쪽으로 옆 학교의 뒷뜰이 보였다.
어느 날 학교 가는 길에 무심코 내려다 본 그 학교 뒷뜰에서,
남자아이들 몇 명이 모여 역시나 '난쟁이'인 그 동급생의 동생을 가운데에 두고
발을 들어 그 아이 머리 위 허공을 가르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해서는 안 되는 장난이었다.
그날은 그냥 지나쳤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때 그 아이들에게 하지 말라고 소리라도 지를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어 10년도 더 넘은 그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또 한 번은 같은 반 친구가 길가다 그 아이들의 엄마가 자신을 쳐다봤다는 이유로 크게 화를 내며 욕을 했다며 '그 아줌마 성격이 이상하다'고 이야기 한 것도 기억이 난다.
 
그 아주머니의 '분노'가 과연 본인의 성격 탓이라고 할 수 있을까.
태어나 처음으로 '시선'만으로도 타인을 괴롭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된 계기였다.

같은 학교에 다니기는 했어도 한 번도 같은 반이 된 적이 없어 직접 말 한마디 해본 적도 없는데,
과연 그 아이와 같은 반이 되었더라면, 아무런 편견이나 가식없이, 동정이나 연민없이 진심으로 그 아이를 대할 수 있었을까? 지금도 우연히 길을 가다 장애인들을 보면 혹시 내 눈빛에 쓸데없는 동정이나 연민이 느껴지지 않을까 매우 걱정된다. 


이  책 한 권이 마음 속에 묻어뒀던 그런저런 생각을 떠오르게 했다.




완득이 역이 유아인, 똥주선생 역이 김윤석 이라는 걸 알고 책을 봤다.
유아인은 최근에 본 '걸오'느낌이 아직 남아서인지 쉽사리 매치가 안 되었는데, 똥주 선생과 김윤석의 목소리는 쉽게 매치가 되어 책을 읽는 내내 똥주 선생의 대사는 배우 김윤석의 목소리로 들려왔다.  


재밌게 읽은 책은 영화화되도 잘 안 보려고 하는 편인데,
완득이는 책을 읽고나니 스크린에 어떻게 펼쳐질지 더 기대가 된다.
하루하루 인생의 목걸이를 만들겠다는 완득이를 배우 유아인은 어떻게 표현할 지, 영화개봉일이 기다려진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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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