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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07 생애 첫 오페라 관람기.
티켓북2011. 5. 7. 01:35



세종문화회관, 토스카(Tosca) 2011.04.23



4학년. 실질적 마지막 학기. 듣고 싶은 교양 수업이 없어서 고민하던차에 내가 예뻐라하는 후배 S가 오페라 수업을 듣는다길래 '고상하게 오페라를 감상하겠어'하는 마음으로 나도 신청. (근데 맙소사 수업이 지정좌석제라서 떨어져 앉게 될 줄이야.) 근데 이 수업 시험이 없는 대신에 오페라 두 작품을 감상해서 감상문을 써야한다. 중간고사를 대신하는 작품은 수업에서 단체로 신청한 오페라 토스카(Tosca).

수업시간을 통해 이런저런 오페라에 대한 상식적인 정보를 접하고, 감상하려는 오페라를 조사하는 과정은 처음엔 얼떨떨했지만, 아기 걸음마 떼듯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사전조사에 재미를 느끼는 데는 네이버캐스트 이용숙 음악평론가의 쉽고 재밌는 설명도 한 몫 했다. (이번 토스카 프로그램에 실린 작품설명도 어딘지 낯익다 해서 보니 이용숙 음악평론가가 쓴 글이었다.) 이제는 제법 오페라 용어가 익숙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문화인’이 되는 것 같아 즐겁기도 하고.


수업시간에 공연 예매를 할 때 까지는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공연 얼마 전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하는 ‘카쉬전’을 보러 왔다가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과 여기저기에 설치되어있는 ‘토스카’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내가 볼 공연이다!’ 하는 마음에 엄청 반가웠다! 흐흐


꼴랑 한 과목 시험봤지만 어쨌든 중간고사기간이 끝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오페라 공연이니 평소에는 불편해서 잘 신지 않던 구두까지 챙겨신고서 출발. (사실 이날 국악공연도 겹쳐서 4시엔 국립국악원에서 토요명품공연을, 5시반에 끝나자마자 세종문화회관으로 날아서 7시반 토스카를 관람했다지...)


같이 수업 듣는 후배와 광화문역에서 만나서 전에도 왔었던 그 ‘계단’에 서서 과제용 사진도 찍고, 프로그램도 사서 미리 읽어보고. 오페라글라스를 대여할까 생각도 잠시 했지만 예전에 뮤지컬 봤을 때 오페라글라스 때문에 오히려 어지러워서 공연에 집중하지 못했던 경험이 있어서 2층이니 괜찮겠거니 생각하고 그냥 공연장으로 입장했다. (이 결정을 나중에 크게 후회하게 될 줄이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TV광고에서 들어만 봤지 실제로 와본 것은 처음이었다. 2층 A석은 자막 나오는 화면이 자리마다 준비되어 있었다. (3층은 양 사이드에 스크린으로 자막이 있다고 한다.) 설레는 맘으로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스카르피아 역의 바리톤 고성현 선생님이 모친상으로 목 상태가 좋지 않아 배역이 교체될 수도 있다는 안내문구가 LCD창에 떴다. 고성현 선생님이라면 우리학교 교수님으로 알고 있는데 모친상을 당하신 것도 유감이고 우리학교 교수님의 무대를 볼 수 없는 것도 아쉬웠다. (배역이 교체되었다는 안내 문구는 1막이 끝나고서야 떴는데, 나보다 더 앞에서 본 사람의 공연 후기를 보니 1막부터 최진학 선생님이 나오신 모양이다.)



토스카는 서곡이 없는 오페라이니 음악 시작과 함께 막이 열리고, 1막이 시작되었다. 미리 본 공연과는 달리 그림이 왼쪽, 안젤로티가 숨는 아타반티가의 예배당이 오른쪽에 배치되었고, 무대 뒤쪽으로는 성당 안에서 위를 올려다 보는 것 같은 구도의 배경이 자리했는데 매우 인상적이었다. 안젤로티가 등장하고……. 아차, 가져간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해봐도 거리가 너무 멀어 배우들의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오페라글라스를 빌려오지 않은 것이 무척이나 후회가 되었다.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음악은 생생히 잘 들리는 것에 위안을 삼으며 그 나름대로 관람하는 수밖에 없었다. (3층엔 스크린으로 얼굴이 크게 보였다고 하는데 내 자리는 2층 깊숙한 곳이라 안보였다.ToT)


드디어 주인공인 카바라도시의 등장. 카바라도시 역은 테너 박기천 선생님이었는데, 1막에서는 뭔지 모르게 불안한 느낌도 있고 아리아 ‘오묘한 조화’ 중간에 약간 불안정한 부분도 있었지만 뒤로 갈수록 멋진 무대를 보여주었다.


토스카는 김은경 선생님. 사실 토스카를 처음 봤을 때 여자 주인공이 굉장히 질투심이 넘쳐서 당황스럽게 느껴졌다. 장르를 떠나 이제껏 봐온 작품에서의 여자주인공은 항상 완벽한 모습에 착한 성격인 것이 너무 당연하고, 질투심 넘치는 여자의 모습은 주로 조연의 성격에서만 찾을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안젤로티의 기척을 듣고, 아타반티 가의 아가씨 초상화를 보고 질투하는 토스카의 모습은 처음에는 조금 낯설게도 느껴졌지만 그래서 ‘토스카’가 사실주의적인 작품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뒤이어 스카르피아도 등장. 스카르피아 역의 백미는 정말 너무너무 밉다는 마음이 들게하는 표독스럽고 악독한 표정이라고 생각되는데 표정을 볼 수 없어서 한 번 더 아쉽게 느껴졌다. (DVD로 볼 때 어느새 몰입해서 스카르피아가 너무 싫다는 생각이 들어 화들짝 놀라기도 했으니까.) 토스카 관련기사를 보니 고성현 선생님의 스카르피아가 더 악독하게 잘 표현되었다고 하던데 고성현 선생님의 무대를 못본게 아쉽기도 하고.

20분간의 인터미션이 있고 2막. 지독하게 카바라도시를 고문하고 토스카를 괴롭게 하는 스카르피아. 그저 행복하게 살던 어느날 갑자기 큰 시련에 빠진 토스카가 가련하기도 하고……. 바닥에 쓰러져 절절히 부르는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Vissi d'arte vissi d'amore)’는 무척이나 감동적이었다. (얼마전 오페라스타2011에서 탈락한 임정희가 마지막으로 부른 아리아다.)


인터미션 없이 5분의 간격만 두고 3막 바로 시작. 1막, 2막의 무대 배경이 매우 예뻐서 3막 무대배경도 무척이나 기대를 했는데,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한 공간에 성벽과 감옥을 모두 표현하지 못할 바에 차라리 한쪽을 포기하자는 생각이었을까. 감옥이라는 표현 없이 덜렁 책상 하나 놓여져 있고, 잠시 후에는 그 옆이 사형집행장이 되고. 공연 중에 가장 아쉬운 부분이 이 부분 이었다. 하지만 3막의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 (E lucevan le stelle)'이 너무 멋져서 무대에 대한 아쉬움도 금새 사라졌다. (이것은 테이가 불렀던 아리아.) 다른 사람들도 1막보다 더 큰 감동을 느꼈는지 아리아 끝나고 나오는 박수소리도 훨씬 컸다. 후에 토스카와 카바라도시의 이중창 중간에 정적이 있자 노래가 끝나지 않았는데 박수가 터져나와 멋쩍은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카바라도시가 총살당하고 토스카가 슬퍼하다가 스카르피아를 죽인 것을 알아챈 부하들에 쫓겨 성벽으로 뛰어내리는 일련의 장면이 너무 급하게 진행된 감이 있었다. 토스카가 슬퍼하는 장면에 몰입하고 있었는데 너무 금방 끝이 나버렸다.


뭐 그런저런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그런 부분은 작은 것이 지나지 않고 전체적으로 굉장히 재미있었다. 아무리 녹음이 잘 된 음반이라도 라이브의 감동에 비길 수 없듯이 DVD공연도 훌륭했지만 역시 직접 관람하는 공연의 감동이 훨씬 크니까.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 올라타고서도 여운이 가시질 않아 머릿속에서 계속 음악이 흘러나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막상 공연 보는 도중에는 집중하고 봐서 느끼지 못했는데, 나중에서야 생각해보니 그렇게 많은 사람이 관람하는데도 휴대폰 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별다른 큰 소음 없이 모두들 굉장히 집중해서 관람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내 바로 앞자리 사람들이 서로 귓속말 하느라 자꾸 시야를 가려서 조금 불편하기는 했지만.) 아, 그리고 LCD의 자막은 DVD자막보다 훨씬 상세하고 배역까지 친절히 나와서 공연을 보는데 굉장히 크게 도움이 되었다.


솔직히 수업과제가 아니었다면 공연도 안 봤을거고 아직도 오페라와 뮤지컬의 차이도 몰랐을 테지. 처음엔 오페라 뭔지도 모르겠는데 계속 감상해야해서 지루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무척 재밌다. 과제하면서 아리아 찾아보다가 오페라스타도 보고. 즐거운 수업이다. 학점도 잘 나와야 끝까지 즐거울테지만. 흐흐

그리고 엄마도 이런데 좀 모시고 오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만 '고상하게' 이런거 볼라니 참 죄송스럽네. 우리엄마는 영화 한 편 보는것도 무지 문화생활한다고 즐거워하시는데. (언넝 돈벌어서 울엄마 호강시켜드려야할텐데 언제쯤이나....쩝.)


다음 공연은 마포 아트센터에서 하는 세빌리아의 이발사로 잠정 결정! 빨리 다음 공연 보고 싶구나.



Posted by 유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