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켓북2012. 3. 9. 15:51


※ 스포일러가 있을지도 모르니 주의하세요. 



화차
감독 변영주 (2012 / 한국)
출연 이선균,김민희,조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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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조조로 화차를 봤다. 매 번 쓰지 못해 벼르고 있었던 예매권까지 사용해서 무려 1500원에. 
맙소사. 그 돈 주고 본 것이 송구할 정도로 좋다. 제 값 다 주고 한 번 더 봐야하나 고민될 정도로. 


사실 화차는 재밌겠다는 생각보다는 미야베미유키 여사님과 변영주 감독님에 대한 충성심 혹은 의리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더 컸다. 40:60 정도랄까.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원작으로, 좋아하는 감독이 만든 영화. 그러니까 꼭 봐야지. 뭐 그런 생각.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보려고 스케쥴을 조정하다가 그냥 혼자 보기로 했다. '재미'가 없을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보고 나왔을 때 영화의 무게에 짓눌리는 느낌이 들까봐. 친구들과 같이 우울한 것 보다 혼자 우울한게 나을테니까. 같은 이유때문에 조조로 봐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도 했다. 하루종일 우울할까봐. 하지만 그건 기우였다.


영화는 기름기 쏙 뺀 담백한 음식 같았다.
아, 핏기를 쏙 뺀이라고 해야하려나.
오히려 더 처절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단 배우 라인업이 굉장히 좋다. 화차 기다리느라 영화를 몇 개나 놓쳤다는 이선균은 말할 것도 없고 성균관 스캔들에서의 자상한 정조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새까맣게 분장하고서 런닝셔츠바람으로 등장한 조성하 아저씨.
캐스팅 소식을 듣고 어울리겠다 생각은 했지만 기대 이상으로 더 연기를 잘해서 이제 정말 배우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김민희, 칙칙한 영화에 해사한 얼굴로 나타나서 필요할 때 마다 포인트를 찔러주는 김별. 난폭한 로맨스 보고나서부터 좋아졌는데 영화에 갑자기 등장해서 아는 사람마냥 반가웠던 고재효 기자 배우 이희준. 정말 잠깐 출연하는 단역이지만 (심지어 얼굴은 얼마 나오지도 않아.) 굉장히 알짜정보 주고 퇴장하시는 스토커 역할에 과속스캔들 왕석현아빠 임지규까지. 제작비 16억 들었다면서 어쩜 그렇게 캐스팅이 깨알같이 좋은지. 한 명 한 명 등장 할 때 마다 감탄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천번의 입맞춤에서는 그렇게도 미웠던 우빈이 전 애인 차수연도 여기선 예뻐보이더라)


특히나 김민희의 열연이 돋보였다. 보면서 이 영화가 그녀의 배우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되겠구나. 그녀의 필모그래피에 대표작으로 기록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불안하다가 사랑스럽다가 천진난만하다가 괴기스럽고 안쓰럽고 처절하고 아름답다. 연기뿐 아니라 강선영이라는 캐릭터를 표현하는데 그녀의 가녀린 몸매도 한 몫 했으리라. 정말 나이스 캐스팅이다. 


또 하나 해사한 얼굴로 동물을 돌보면서 중요한 순간마다 맹활약을 해주는 한나역의 김별. 선영을 뒤쫓는 사람들이 남자이기에 놓치는 점까지 보완해주니. 한나 없었으면 어쩔 뻔 했어. 아마도 원작에서의 사토루의 위치를 한나가 가져가지 않았나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그런데 나는 김별을 볼 때마다 참 예쁘다고 생각하면서도 왜 매번 저사람이 김별이었어? 이러는걸까.) 


약혼자 가즈야(영화에서는 문호) 분량이 늘어난 것은 탁월한 각색인 것 같다. 직업이 은행원에서 동물병원 원장님이 된 것도. (동물 수술하는 장면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뭐, 원작의 혼마 형사님이 본다면 내가 뇌물받고 짤린 전 형사가 되다니 하고 분개할지도 모르겠지만. 대단한 것은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180도 달라지고 비중도 확연히 달라졌는데 원작의 맥이 그대로라는 점이다. 그래서 변영주 감독님 화차를, 미미여사님을 정말정말 좋아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잘 만들려고 엄청나게 노력했구나. 그런 생각도.

정말 재밌게 읽은 책의 영화판은 잘 보지 않으려 했던 내 오랜 습관은 이제 버려야 하지 않을까나. 





행복해지고 싶어서 온 몸에 피칠갑을 하고서 구역질을 하던 여자.
피에 젖어 퍼덕이던 나비.  
이 영화는 그 이미지로 기억될 것 같다. 




또 하나의 포인트. 영화 속 선영의 정체가 서서히 밝혀지면서 등장하는 장소 흑백다방. 
나는 
흑백이라는 간판을 보고서 여사님의 차기작을 떠올렸는데, 어머 흑백다방은 진해의 명소라네.
이것은 그냥 우연일 뿐인가. 변영주 감독님한테 물어보고 싶어. (트윗에 물어볼까. 흐음.) 
(수정) 직접 질문해본 결과 정말 우연일 뿐이었다. 으헤헤. 감독님 답변 감사해요.
 

그나저나 여사님 차기작은 외딴집과 비견될 정도라니 영화처럼 대박날 듯.


 



조조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관에 관객이 꽤나 많았다. 첫날 벌써 7만이 넘게 들었다 하고 예매율 1위인 것으로 보아 이 영화가 변영주 감독님께 발레교습소 때보다 더 큰 부와 명성을 선사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매우 기분이 좋다. 발레교습소를 봤던게 2005년, 파릇파릇했던(정말?) 새내기 시절이었는데 시간이 어느새 흘러 나는 휴학까지 꽉꽉 채운 대학 졸업반이로구나. 다음 작품까지의 텀은 이렇게 길지 않기를 바라며. 화차 포스팅 끝. 



 
Posted by 유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