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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3.31 소유의 즐거움 (버스커버스커 1집 리뷰) 4
좋아요2012. 3. 31. 18:01

실로 오랜만에 CD를 샀다. 공동구매로 한 장 그리고 광화문교보 핫트랙스에서 한 장. 브라운아이즈였나 브라운아이드소울이었나 아무튼 잃어버려서 중고로 한 장 더 산 것 말고는 두 장 구매한 앨범은 처음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공동구매 택배가 곧 도착할테지만 굳이 교보문고에서 한 장을 더 구매한 이유는 뭐랄까. 왠지 모르게 오랜만에 음반을 내 손으로 직접 구매하는 기쁨을 느끼고 싶었달까. 


인터넷 쇼핑이 발달하다 보니 지금은 '구매'라는 개념 자체가 굉장히 추상화 되어있는 기분인데 돈을 내고 물건을 받아오는 행위 자체가 그리웠다. (그러고보니 이왕이면 카드결제 말고 현금을 내고 살걸 그랬네.)


오전 열시 반 쯤 갔더니 아직 도착을 안했다며 11시 반 넘어서 전화해보고 오라고 하기에 근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다 다시 가보니 아직 진열도 안 된 앨범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CD를 샀더니 왠지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10년쯤 전에 단발머리 중학생이던 그 때 친구들과 모여 읍사무소 근처 음반가게에 진을 치고 앉아 "아저씨, god CD 언제 와요? 포스터 꼭 주셔야 해요." 이러면서 기다렸던 것도 새삼 기억나고 말이지. 


앨범이 유독 하얗고 코팅도 안 되어있는 재질이라서 굉장히 신경이 쓰인다. CD개봉하자마자 손 씻으러 갔다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마냥 웃을 일이 아니다. (이건 음반을 소중하게 다루라는 고도의...)

버스커버스커 1집을 보관하는 팬의 자세.jpg


장범준이 직접 디자인 했다는 앙증맞은 캐릭터들과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짓게 만드는 재킷 사진들 덕분에 한장한장 넘겨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Thanks to는 정말이지 오랜만에 봤다. (옛날엔 이 여자이름은 뭐지?!! 설마 여자친구? 이러면서 눈에 불 켜고 봤었는데. 흐흐.)

 

이제는 CD플레이어도 없어 노트북에 CD를 넣고 재생을 해야했다.

여느 영화 OST로 써도 손색이 없을 듯한 인트로 봄바람이 흘러나온다. 정말이지 아련한 느낌을 주는 걸로 순위를 매기자면 버스커버스커가 1등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리고 이어지는 2번 트랙 첫사랑. 시작하는 가사가 '처음'이다. 그 첫 음이, 그 가사가 주는 떨림이 너무 좋아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3번 트랙 여수밤바다. 데모버전이 돌아다닐 때도 밤에 듣기에 너무 좋아서 1분 남짓한 노래를 자기 전 듣는 재생목록에 몇 개씩 추가해놓았었다. 이번 앨범에 들어있다는 소식만으로도 기뻤는데 얼마 전 팬미팅에 갔다가 이 노래를 라이브로 듣고서는 주책맞게 눈물바람을 했지 뭐야.

아무래도 음반이 라이브보다는 감동이 덜하지만 여전히 밤에 잠자리에 누워서 듣기에는 여수밤바다가 최고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누가 밤에 전화해서 이 노래를 불러준다면 사랑에 빠져버리고 말거야.

 

그리고 4번 홈런타자 트랙 벚꽃엔. 시기적으로 정말이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타이틀 선정이다. 날씨가 제법 따뜻해져 방심했다가도 갑자기 찬바람이 정신을 번쩍 차리게하는 요즘이지만 이 노래를 들으면서 눈만 감으면 장소불문 벚꽃잎이 흩날리는 곳이 되어버린다.

너무너무 좋지만 이어폰 한 쪽씩 나누어끼우고 같이 벚꽃놀이 갈 남자친구가 없기에 듣고나면 묘하게 배가 아파진다는 단점이 있는 노래임. 흥.


그리고 선공개되었던 5번 트랙 이상형

이제 버스커버스커의 시그니처가 되어버린 '헤이 브래드' 때문에 걱정도 많이 했지만 이제 마음편하게 엉덩이 들썩들썩하면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쯤에서 길들여지지 마라, 길들여라! '걘역시 노트'가 생각났다. 길들여 지고 있어.)

보통 사람들은 가사를 듣고 엽기적이라며 깜짝깜짝 놀라는 모양인데 역시 아무렇지 않게 들을 수 있는건 그동안 자작곡에 익숙해진 탓이겠지.  

 

그리고 이상형을 정점으로 뒷부분은 살짝 어둡고 쓸쓸한 분위기가 된다.


그 시작인 6번 트랙은 외로움 증폭장치 (브래드 드럼 한판 쉬기).

만우절 날 자취방에 모여 앉아 고개 까딱까딱하며 연주하고 듀엣으로 노래하던 그 영상은 정말이지 100번도 넘게 본 것 같은데 그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는 편곡이라서 참 좋았다. 

이 노래를 들으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은 역시 김형태의 소년같은 목소리와 매치되는 김형태의 교복입은 모습. 그리고 드럼 한판 쉬는 브래드의 휘파람은 Two thumbs up!

'시계태엽 오렌지'라는 영화를 보고서 쓴 가사라니. 영화도 찾아봐야겠다.

 

7번 트랙 골목길과 이어지는 8번 트랙 골목길 어귀에서.

7번 트랙은 '찹쌀떡 장수 : 김지웅' 이 웃음 포인트. 

골목길 어귀에서는 좋은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돌아다니던 음원의 음질때문에 자작곡 중에는 자주 듣지 않았던 노래였는데, 이제 정말이지 마음껏 들을 수 있겠다. 좋아. 

 이 노래는 왜 들을 때 마다 장범준 특유의 그 발동작들이 생각나는지 이유를 모르겠네.

 

 9번 트랙 전활 거네. 이것도 음질이 안 좋아서 잘 안들었던 노래로구나. 

나만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떠나왔지만 결국 잊지못해 전화를 걸 수 밖에 없는 심정이라니.

글쎄 난 그래본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이번 앨범에서 씁쓸한 느낌으로는 이 노래가 제일이다.

 

10번 트랙은 어두워진 분위기를 살짝 반전시키는 꽃송이가

좋아좋아 멜로디언 쏠로! 도 좋았지만 하모니카 쏠로! 도 좋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을 담아 목청높여 열심히 부르는 청년. 확실히 김형태가 주는 '소년' 분위기와는 다르게 장범준은 청춘이고 청년이야.

  

11번 트랙 향수. 마지막 가사가


너무 좋아 아아아아 아아아아아 아아아 아아아아

허오오오 오오 허오오 오오오 허오

 

그래 나도 좋다. 이렇게 좋은데 마지막 트랙이라는 이유로 음원순위에서 (상대적으로)하위권이라니 이 안타까운 마음을 어찌다 표현하리.  

둥가둥가(?)로 시작하던 도입부 없이 바로 가사로 들어가버려서 조금은 아쉽지만 그렇지 이제 길들여져 버렸다. 장범준 니가 조련神이다.

 

그리고 그 다음 트랙은 봄바람. (무한 반복이다. 이 앨범의 마지막 트랙은 없ㅋ엉ㅋ.)

 

 

뭐랄까. 어느 트랙 하나 빼놓을 수 없이 밸런스가 좋고 따로 떼어 놔도 명곡이다. 팬미팅 때 서슴없이 이번 우리 앨범 명반이에요. 라고 말하던 장범준의 자신감은 역시 근거 있는 자신감이었다.

커버곡과 여러 버전까지 포함해서 100개가 넘는 데모음원이 돌아다녔기에 모든 것이 다 실릴 수는 없었지만 그래서 아쉬운 것이 아니라 그래, 봄에는 이런 노래란 말이지? 그렇다면 이들이 다른 계절에 하는 노래는 어떨까 궁금해진다. 50살 되어 여수밤바다를 부르고 있을 본인의 모습을 이미 생각하고 있다니 이들이 앞으로도 계속 좋은 음악을 들려줄거라는 확신이 생긴다.

 

 

이렇게 구구절절히 모든 트랙에 코멘트를 단 이유는 굳이 음반을 사지 않고 음원만 구매하더라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앨범 전체를 들어보았으면 하는 바람때문이다. (뭐 이미 타이틀 말고도 많은 곡들이 음원차트 상위권에 장기집권할 태세지만.)

  

사실 이 음반을 만나기 직전까지 CD 구매는 고사하고 이제 더이상 음원을 저장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든 생각나는 노래는 스트리밍해서 들으면 되는 시대가 되었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오랜만에 음반을 사서 들으니 역시 통으로 듣는 즐거움이 있고, 좋아하는 뮤지션의 CD를 소유하는 즐거움을 무시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요즘은 정규앨범 자체도 흔하지 않을 뿐더러 CD를 사야겠다는 마음이 들만큼 좋은 가수가 많지 않으니. (그런데 버스커버스커 1집은 10대들에게는 생애 처음 구매하는 앨범, 20대 이상에게는 오랜만에 구매하는 앨범으로 유명하다지?)


두 장의 앨범 중 하나는 막내동생에게 보내주려 했는데 동생 친구도 갖고 싶다하니 어떻게 이를 어째야 하나. 커피 몇 잔 안 마신다 생각하고 한 장 더 사서 보내줘야겠다. 지금 오프라인 매장은 들어오자마자 매진되는 상태라하니 한 장 더 구하려면 시간이 꽤나 걸리겠지만.

  


그리고 음반을 구매한 팬들을 위한 작은 선물? 이스터 에그랄까? 이런게 있다.

색깔이 다른 글자를 순서대로 읽으면

 

        나랑 노래불러 다시 노래불러 둘이서 랄라라 

        

이 것 말고도 그대는 아나요 난 너 좋아요   난 이 향기를 맡아 도 숨어있으니 

궁금한 분은 CD 사서 찾아보시라.   



이상 리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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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