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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19 달과 게 4
독서일기2011. 5. 19. 16:49
달과 게 - 8점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북폴리오





※ 인용문구나 내용에 스포일러가 있을지도 몰라요.



 신이치는 슬픈 표정을 억누르는 것이 정말 힘들고 참을성이 필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89


 신이치는, 하루야가 셔츠를 거칠게 잡아당겼을 때의 감촉이 아직도 등에 남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앞을 걷는 하루야의 등을 바라보여 바위나 나무뿌리에라도 발이 걸려 하루야가 곱드러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여느 때보다 거리를 좁혀 걸었기 때문에 신이치는 지금이라면 언제라도 하루야의 셔츠를 붙잡을 수 있었다. 105


 신이치는 점심시간에 자신을 놀리는 편지를 읽었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사실은 슬픈데도, 사실은 분한데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으로 수업을 받았을 때의 괴로움을 떠올렸다. 분명 쇼조는 그 몇 배나 인내해 왔으리라. 자신이 왼쪽 다리를 잃은 것을, 산에 친구를 내버려두고 온 탓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나루미와 마찬가지로 무슨 '이유'가 필요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198


 신이치의 가슴 속에 젖은 모래가 점점 쌓여간다. 그 모래는 하루야의 솜씨에 놀란 척을 하거나, 나루미의 칭찬에 동의할 때마다 부피가 늘어났다. 232


 이 장소를 하루야와 함께 발견한 사람은 신이치였다. 나루미를 이렇게 무리에 끼워준 사람도 신이치다. 어째서 자신이 소외되어야 하는지, 어째서 두 사람이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고, 자신은 그 얼굴을 바라보아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납득하고 싶지 않았다. 238


"친구는 신기하게도 질리지가 않지. 어른이 되어 이틀이고 사흘이고 계속해서 만나면 바로 싫어지지만, 어릴 적에 만나는 친구는 그렇지 않아. 그건 도대체 뭐가 다른 걸까?"  240


 수업이 진행됨에 따라 신이치의 가슴속은 붓을 씻는 물통의 물처럼 색깔이 바뀌어 갔다. 315


"신이치, 뱃속에다가 너무 묘한 걸 기르지 말거라."  344


"내, 계속 생각했는데, 소라게는 우짠지 신기한 것 같지 않나? 껍데기는 언제쯤부터 필요한 거겠노? 얼라 때는 전부 껍데기 같은 건 안 갖고 있다 아이가. 그래서 전부 이래 쌩쌩 헤엄처 다니는 거겠제? 껍데기를 짊어지믄 어느 정도 안전할지도 모르지만, 대신에 전혀 헤엄 몬 친다 아이가. 어느 쪽이 좋겠노?"  352


"니가 생각했던 거 내는 안다. 니가 내를 싫어하기 시작한 거 안다. 여서 눈 감고 손 모으고 있을 때도, 니 내 생각했제? 내가 우예 되믄 좋겠다고 생각했잖아. 하지만 그거 아나? 니한테 미움받으믄 내는 이제 갈 데가 엄따." 355


 어째서 전부 잘 안 되는 걸까.
 하루야의 말이 지금은 신이치의 가슴속에서 되풀이되고 있었다. 공명하는 것처럼 신이치 자신의 목소리가 어느덧 그 말에 겹쳐지고, 그 목소리에 다시 하루야의 목소리가 겹쳐지는 사이, 정신을 차리자 신이치의 가슴은 수없이 많은 똑같은 말로 빈틈없이 메워져 있었다. 어째서일까. 어떻게 하면 될까. 우리는 어떻게 하면 될까. 358



미치오 슈스케.

오랜만이다. '섀도우'를 읽었던 기억은 있는데, 내용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잊어버렸다.
정보를 얻을 겸 '일본 미스터리 문학 즐기기' 까페에 가입하고 보니 '달과 게' 서평이 꽤나 자주 올라오길래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읽고보니 나오키상 수상작.


신이치의 심리묘사가 굉장하다. 마음에 든 페이지를 적어가며 읽다보니 다른 책에 비해 좀 많다.
젖은 모래라던지 물통의 물 같은 표현은 참 할말을 잃게 만든다. 
신이치 같은 생각. 나도 어렸을 때 했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껍데기를 짊어지고 살고 있으니까.




주인공 마음을 따라읽다보면 '어? 설마? 그래도 그러면 안되는데' 싶다가 '역시. 다행이야' 하는 마음이 든다. '그럴 줄 알았어' 하는 부분도 있고. 주인공이 아이니까 나는 아무래도 이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데, 좀 더 '미스터리'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쉽다는 평도 있는듯. 미치오 슈스케의 전작에 대한 기억이 싸그리 사라진데다 나오키상 수상작이라는 것도 인식 못하고 읽어서일지도.  


근데 책장을 덮고나서 마음이 가볍지는 않다.
이 소년들 커서 어떻게 될지 조금 걱정이 된다. 서로의 인생에 중요한 인물이겠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연락을 하는 그런 친구관계가 될 것 같지는 않아서. 뭐 그렇다 한들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미묘하게 우울해졌다.





덧. 표지가 참 예쁘다. 겉의 날개표지말고 은사로 소라게가 그려진 속표지가 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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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