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2011. 5. 13. 16:15


리피트 - 8점
이누이 구루미 지음, 서수지 옮김/북스피어


도서관에는 독특한 냄새가 있다. 문서 냄새――종이 냄새라고 해야 할까.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에는 특히 냄새가 강렬했다. (p.91-2)


그러니까 말이야. 딱히 날씨가 아니라도 역사 전체는 우리 생각 이상으로 완고하게 만들어진 게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어. 자잘하게 전과 다른 일이 일어나도 그것을 자연스럽게 원래대로 돌려 버리는 그런 이치가 작용한다는 생각이 들어. 뭐라고 말해야 할지...... 선로를 따라가는 느낌이야. 약간은 어긋나도 자연히 궤도가 수정되지. 궤도를 바꾸려면 선로 폭 이상으로 방향을 크게 틀어야 해. 크게 틀어 탈선을 시켜서 역치를 넘지 않는 한 저절로 원래대로 돌아가 버리지- .
(p.413-4)


원제는 운명의 수레바퀴 일까?

시간여행이라니, 개인적인 경험과도 맞물려서 굉장히 흥미로웠다. 꿈에서 본 장면을 그대로 현실에서 맞닥뜨린 일이 많아서―최근의 예를 들자면 한강에서의 자전거 사고 순간 같은 장면―책에서의 모리의 그 '기시감'과 함께 순간 기억이 떠오르는 느낌이 뭔지 알 것 같으니까. 뭐, 내 경우는 현실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단편적인 장면이 되풀이 될 뿐이라 책속의 인물들처럼 경마로 한 몫 잡거나 할 수는 없지만.


어렸을 적부터 반복된 그 일련의 '경험'때문에 막연히 운명이라는게 존재하겠거니―꿈을 꿀 당시에는 전혀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니까. 예를 들어 중학교 때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노는 장면을 꿈으로 꾼다거나 하는 식의― 작은 일이야 변동 가능성이 있겠지만 인생의 큰 줄기는 정해져 있는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고, 현실에서 '아, 이거 꿈에서 꾼 장면인데 꿈이랑은 다르게 움직여볼까?'하는 생각을 했다가 왠지 꺼림칙한 마음에 관둔 적도 있어서 뭔가 이 책을 더 몰입해서 보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어렸을 때는 나 말고 남들도 다 그런 꿈을 꾸는 줄 알았는데, 친구들과 이야기해본바 반절정도는 적당히 신기해하고 반절정도는 웬 이상한 소리냐는 식의 반응인걸보니 남들은 안 그러나보다. 어쩌면 이거 '슈퍼파워'일지도.흐흐)


흔히들 생각하는 시간여행과는 조금 다르게, 굉장히 제한된 조건하에서의 '리피트'라는 소재 자체가 독특해서 재미있고.'동료'들이 맞닥뜨리는 일련의 사건들을 따라가다가 어라?하며 찾아오는 반전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은데 책장을 덮고나니 왠지 모르게 찜찜한 기분이 들어 '이게 뭐야.'라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왜그랬을까.



아무튼 이런저런 일로 한 번에 몰아서 못보고 짬짬히 나눠서 봤지만 읽어내리는데 속도감은 있다. 재미도 있고. (북스피어 책들의 최고의 미덕아닌가. 재미.) 그래서 결말이 찜찜하긴 했지만 그대로 도서관에 다시 가서 같은 작가의 '이니시에이션 러브'를 빌려왔다. 다음 책은 그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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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