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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2011. 9. 24. 01:22


도가니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공지영 (창비,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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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감독 황동혁 (2011 / 한국)
출연 공유,정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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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2일. 공지영 작가의 도가니를 원작으로 한 영화 도가니가 개봉했다.

얼마 전, 책으로 도가니를 읽은터라 영화를 볼까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인상깊게 읽은 책은 영화로 보고 싶지 않기도 하고, 책과 영화의 내용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뿌리는 같은 이야기이니 보고나면 그 먹먹한 마음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고. 그런저런 생각에 영화를 볼 생각은 없었는데, 트위터에 시사회를 사람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사람들이 입을 모아 영화의 불편함은 그냥 불편함이 아니라 '꼭 알아야하는, 그냥 지나쳐서는 안되는 불편함' 이라고 했다. 영화가 궁금해졌다. 마침 학교 근처 극장에서 출연배우들이 무대인사를 한다는 소식까지 들려와서 바로 예매를 했다.


역시 무대인사의 힘은 커서 객석은 꽉 들어찼고, 소개와 함께 들어온 배우 공유의 존재감은 엄청났다. 왜 배우들이 영화 개봉하면 부지런히 무대인사를 다니는지, 현장에 있어보니 생생히 느껴졌다. 특히나 공유는 이 영화제작하는데 처음부터 많은 부분 기여했다고 들었는데, 그때문인지 형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차분하게 영화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근데 말이지. 내 앞자리에 앉았던, 뒤늦게 와서 플래카드를 번쩍 들어 내 시야를 가리고 공유가 무대인사 마치고 나가자마자 번개같이 따라나갔던 그녀들. 글쎄, 이미 영화를 봤고 단지 좋아하는 배우의 무대인사때문에 영화관을 다시 찾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대들이 좋아하는 그 배우는 자기 얼굴보려고 자리 박차고 뛰쳐나오는 팬들보다는 본인이 출연한 영화를 보고 깊이 공감해주면 더 고마워하지 않을까나. 나가준 덕분에 난 뒷자리에서 편하게 보긴 했지만, 맙소사. 영화관에 플래카드는 난생 처음봤네.) 


자리를 박차고 떠난 그녀들이 안겨준 황당함과 영화를 다 보고나면 무력감에 일어나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공유의 말을 곱씹으며 영화를 봤다.


공유의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진짜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 까지도 일어날 엄두가 안났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현실이 답답한 건 다음문제였다. 
책과는 달라진 영화의 내용은 더 잔인했다. 꼭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책이 더 좋다는 내 고집을 바꿔놓을만큼 잘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강인호의 고뇌를, 서유진의 의지를 담아내기엔 125분은 너무 짧았고, 스스로 '충격실화'라고 칭하는 그 사실을 쫓아가는 것 만으로도 버거웠다. 전체적으로 인물들이 너무 평면적인 캐릭터가 되어버렸다. 특히나 가장 아쉬웠던 점은 주연 배우들이 너무 젊다는 것. 개인적으로 배우 정유미는 좋아하지만 서유진을 소화하기엔 너무 맑고 여린 얼굴을 갖고 있었다. 좀더 연륜있고, 아이를 키워본 배우들이 주연을 맡았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책보다 좋았던 점은 딱 하나. 민수의 눈빛이 영상으로 구현되었다는 점.

그 눈빛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백승환이라는 이름을 엔딩크레딧에서 찾아냈다.
혹여나 수술해서 얼굴 망가뜨리지 말고, 건강하게 잘 커서 좋은 배우가 되면 좋겠다.


나간김에 이것저것 사려던 것도 있었는데, 도저히 그럴 기분이 나지 않아 그냥 돌아오는 길에 오랜만에 방치해뒀던 블로그에 새 글을 올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저번에 읽고서 마음에 드는 부분 사진으로 찍어만 뒀던 것도 정리해 올린다.


의미도 있고 영화자체만 놓고 본다면 볼만한 영화인 것은 맞다. 망설이는 이유가 '불편하고 우울할까봐' 라면 보라고 권하고 싶다. 하지만 책과 영화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책.

그리고 중요한 점은 책을 덮고,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도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현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다짐.


 천연요새처럼 솟아 있는 절벽 끝에 맞닿은 운동장 아래는 광활한 갯벌이었다. 그 너머에는 바다가 있을 것이다. 썰물이 모두 빠져나간 지금 그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어딘가에 분명히 바다가 있을 것이다. 33


"그게 말이야. 우는 일이라는 게, 그게 장엄하게 시작해도 꼭 코푸는 일로 끝나더라고." 135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 때문에 날것 그대로의 몸뚱이를 내놓고 어떤 치장도 설득도 하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진실은 가끔 생뚱맞고 대개 비논리적이며 자주 불편하다. 진실 아닌 것들이 부단히 노력하며 모순된 점을 가리고 분을 바르며 부지런을 떠는 동안 진실은 그저 누워서 감이 입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 세상 도처에서 진실이라는 것이 외면당하는 데도 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면 있는 것이다. 165


"민주화되고 나면 더이상 이런 일 안할 줄 알았어요. 화가 난다기보다는 뭐랄까요? 견고한 저 성벽이 정권이 바뀐다고 변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예수가 다시 온대도 또 십자가에 못박혀 죽겠구나 싶기도 하구요. 저런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또다시 예수를 죽이겠죠." 189-190


"……나는 생각했어. 왜 세상에서는 착한 사람이 맞고 고문당하고 벌받고 그리고 비참하게 죽어가나? 그럼 이 세상은 벌써 지옥이 아닐까? 대체 누가 이 질문에 대답해줄 것인가? 누군가 그러더라. 엄마였던가, 선생님이었던가, 아님 아버지와 친분이 있는 다른 목사님이셨던가…… 아니면 그 사람들이 모두 그랬던가. 열심히 공부하고 그래서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을 알게될 거라고, 그리고 나도 그 말을 믿었지. 그런데 얼마 전, 자애학원 사건을 접하면서 나는 깨닫게 된 거야. 어른이 되면 그 대답을 알게 되는 게 아니라, 어른이 되면 그 질문을 잊고 사는 것이라고 말이야. 이제 나는 정말 그 질문에 대답하고 싶어. 그렇지 않다면 내 아버지의 삶도 연두와 연두 아버지도 너도 나도, 우리의 삶은 정말 꾸드러빠진 떡조각처럼 무의미해질 거야. 가난한 것도 두렵지 않고 고통도 그리 무섭지 않아. 내게 가해진 모든 평판들 소문들도 자기네들끼리 실컷 지껄이라지. 하지만 의미가 사라지는 것, 뭐랄까, 우리의 삶이 그냥 먹고 싸는 것, 돈을 모으고 옷을 사고 하는 그 너머의 무엇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야, 나는 확인하고 싶어. 그렇지 않다면 살아가는 걸 견딜 수 없을 거 같아, 강선생." 227


가난이 남루한 이유는 그것이 언제든 인간의 존엄을 몇장의 돈과 몇조각의 빵덩어리로 치환할 수 있기 때문일까. 233


서유진은 오래도록 그런 생각을 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뭐지? 하고 누군가 물으면 그녀는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건 거짓말이었다. 거짓말. 누군가 거짓말을 하면 세상이라는 호수에 검은 잉크가 떨어져내린 것처럼 그 주변이 물들어버린다. 그것이 다시 본래의 맑음을 찾을 때까지 그 거짓말의 만 배쯤의 순결한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다. 246


"……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대해 너무 이상한 믿음을 가진 거 아니에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유명한 이유는 그게 천지창조 이래 한번 일어난 일이라서 그런 거라고는 생각 안해요?" 254-255


"세상 같은 거 바꾸고 싶은 마음, 아버지 돌아가시면서 다 접었어요. 난 그들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는 거에요." 257


"…… 내가 불쌍하고 불행한 적이 있다면 그건, 나도 가끔은 뻔히 아니라는 걸 알면서 그것과 타협하고 싶어질 때야."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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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