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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0.09 28
  2. 2011.08.03 7년의 밤
  3. 2011.07.28 내 심장을 쏴라
독서일기2013. 10. 9. 16:37

28

 

   

28 - 8점
정유정 지음/은행나무

 

어쨌거나 삶은 살아 있는 자의 것이었다. 죽은 자는 산 자의 밥상 뒤에서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진경이 그걸 너무 서운해하지 말았으면 했다. 열일 젖혀두고 달려가지 않는 자신을 너무 미워하지 않기 바랐다. P.183

 

빨간 눈은 지옥 불처럼 화양을 태웠다. 용케 불길을 피한 이들은 굶어 죽거나, 얼어 죽거나, 다른 사람들의 손에 죽었다. 약탈, 총질, 강간, 살인, 방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온갖 일들이 매일, 매 순간, 도처에서 일어났다. 서로 죽이고 죽고 분노하고 절망하고 공포에 떨며 고속으로 공멸해갔다. 남은 자들은 서로를 피해 가시 세계 밑에 숨어 지냈다. p.473

 

 

※ 내용 중에 스포일러가 있을지도 몰라요.

 

 

정유정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은 진작에 들었다. 그리고 기세 좋게 팔려나간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바쁘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걱정이 되기도 해서 선뜻 읽지 못했다.

 

걱정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신작이 <7년의 밤>보다 실망스럽지는 않을까. 그런 걱정 이었을까. 뒤늦게 <28>을 읽고 나니 그런 걱정은 역시 기우였다.

 

 

분명히 상황은 더 지옥 같은데 전작보다 가독성은 더 좋아졌다. 읽는 이를 옥죄어 책을 읽다가 어깨가 뻐근해지는 경험을 하게 했던 전작보다 훨씬 담담하다. 초반부는 (영화를 포함하여) 재난을 다루는 다른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지만 다 읽고나면 역시 정유정은 다른 면이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특히나 늑대개 링고의 시점이 인상적이다. 책이기에 가능한 묘사. 대체 불가능한 이 작품의 매력포인트이다.

 

<28>은 '개'를 대하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대장, 내 아이들을 어쨌어."라고 말하는 듯한 마야의 다갈색 눈동자에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서재형, 아름이라는 이름의 맹인 안내견을 친구로 생각했던 승아, 동물학대-야뇨증-방화 3단 콤보를 시전하는 사이코패스의 전형으로 개를 아버지에게 못한 화풀이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박동해, 아내와 딸을 잃고 개를 증오하게 된 기준, 그리고 애초에 동물에는 별다른 관심조차 없었지만 구덩이에 생매장당하는 개를 보고 각성하게 되는 윤주까지. 작가는 각각의 태도에 대해 비난도 계몽도 하지 않는다. 다만 종국에는 개도 사람도 같은 처지가 될 뿐.  

 

이번 작품은 책을 덮고도 등장인물들의 다른 이야기가 더 궁금해진다. '고기리 촌닭집' 딸 윤주가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수진의 쌍둥이 남동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형사 박주환의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특히 박주환 형사는 다른 작품에 까메오로라도 다시 등장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7년의 밤>을 보고 나서도 느꼈지만 우연히 <열한 살 정은이>를 읽게 된 것은 참 행운인 것 같다. (정유정의 글을 출간 순서대로 읽은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매번 더 좋은 이야기를 쏟아내는 정유정 작가는 이제 '믿고 보는 작가' 리스트 상위권에 안착. 다음 번 작품은 고민없이 집어들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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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선♪
독서일기2011. 8. 3. 13:20

7년의밤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정유정 (은행나무, 2011년)
상세보기



무서운 진실, 너무나 어마어마해서 감당할 수 없는 일은 못 본 체하고 싶은 것이 인간이라는 영장류의 천성일지도 몰랐다. 361

어디선가 그런 얘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인간은 총을 가지면 누군가를 쏘게 되어 있으며, 그것이 바로 인간의 천성이라고. 474





아무리 도서관 홈페이지를 기웃거려도 예약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홧김에 구매.
이 책은 그렇게 내 손에 들어왔다.
배송상자에서 꺼내들면서 책이 제법 묵직하다고 생각했다.
읽고나니 책의 무게에 온 몸이 눌린 느낌이다.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 

다소 불친절하고 충격적인 첫 문장과는 달리 '살인마'의 아들에게 쏟아지는 물리적, 정신적 폭력을 담담하게 서술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시종일관 눈을 뗄 수 없게 매력적이다.

어둠과 안개가 주변을 둘러싼듯한 느낌이 책장을 덮고서도 한참동안 가시지 않는다.

책을 읽고나서는 지금 내가 느끼는 느낌 그대로 박제를 해놓고 싶었다.
이 느낌이 날아갈까 입을 열어 말을 하기가 꺼려졌다.

속도감이 넘치지도, 소름이 돋을만큼 자극적이지도 않지만 대신에 서서히 옥죄어 드는 기분을 맛보게 한다.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는 재미있었지만 작가의 머릿속에 구현되는 장면이 내 머리속에서는 잘 구현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고, '내 심장을 쏴라'에 와서야 비로소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이 내 눈 앞에도 어느정도 보이는 듯 했다. 그리고 '7년의 밤'을 만나보니 머릿속으로 그린다는 의식조차 없이 어느새 스르르- 주변에 안개가 드리운 느낌이다.


혹자는 소설 속의 영제가, 혹은 승환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평을 하기도 하나보다.
그런데 나는 책을 덮는 순간까지 그런 생각이 한차례도 들지 않았다.
이미 우리 주변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넘쳐나고, 허구보다 더 무서운 현실이 존재하기도 하니까.
영제, 승환, 현수, 서원, 세령, 하영, 은주.
그들이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는 이미 책의 내용으로 충분히 설명된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배경은 세령마을. 그리고 세령호.


책을 읽다보니 아무래도 모티브가 된 지역이 있을 것 같았다. 백프로 가상공간이라기엔 그 설명이 너무 상세하기도 하고, 보성, 장흥, 해남 같은 지역은 실제 지명이 나오기도 하니까.  궁금해져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장흥의 탐진댐이 아닐까 하고 추측하는 글도 봤다. 그러나 계속 읽다보니 탐진댐이라기에는 조금 어색한 부분이 몇군데 있었다.(장흥이라는 지명이 그대로 나오기도 하고, 아무래도 순천으로 추정되는 호수 근처의 S시의 존재 등) 의문은 권말에 작가의 말에 나오는 J댐이라는 단어에 스르르 풀렸다.



바로 주암댐.

그리고 우연히도, 내가 태어났을 당시 살던 마을이 바로 그 댐으로 인해 물 밑에 잠겨있다.

 




 











주암댐. 책에 삽입된 지도의 댐 그림과 유사해 보이기도.




영아기를 보낸 마을이라 기억은 전혀 없지만 주변을 지날 때 마다 묘한 감정이 들곤 했다.
책을 읽고나니 내가 태어났던 마을도 아틀란티스가 되어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아련해졌다. 


이렇듯 정유정작가의 작품의 배경이 주로 광주, 전남인 것도 내가 그녀의 책을 읽는 큰 요인이다.
그녀는 5.18을 이야기 하고, 그녀의 책엔 득량도가 자주 등장한다.
(득량도는 보성과 고흥의 바다 사이에 있는 섬으로, 맑은 날이면 지금 우리집 거실에서도 볼 수 있다.)

그녀의 글 곳곳에 내가 살던 곳이, 가족들과 여행했던 곳들이, 학창시절 소풍갔던 곳들이 튀어나온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광주, 전남지역을 속속들이 잘 알고있고, 이해하고 있고, 사랑한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녀의 글은 서울에 살면서도 고향을 그리는 마음에 단비를 내려준다.



작가는 모티브가 된 곳의 실제 지명을 밝히면 논란이 있을까봐 조심스러워 하는 모양이던데
글쎄, 실제 살인사건도 영화로 찍어가서 개봉한 마당에 허구의 이야기로 무슨 문제가 생기겠는가.
오히려 관광상품 개발에 혈안이 된 전남 지자체들의 특성상 수년 내에 주암댐 근처에 '7년의 밤 여행상품'을 개발해 내지 않을까가 더 걱정이다. 집에 내려가면 유명해지기 전에 둘러봐야지.


의도한 것은 아닌데 우연히 정유정작가의 작품을 출간순서대로 읽었다.
열한 살도 아닌 마당에 열한 살 정은이를 읽고 펑펑 울었던 중학생이 20대의 중반이 되어 그 작가를 다시 만났다.
작가는 10년이라는 시간의 간극보다 더 어마어마한 이야기꾼이 되어 내놓는 작품마다 계단을 대여섯개씩 훌쩍 뛰어넘고 있다.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은 어떨까. 기대되는만큼 두렵다.



책머리에 지도가 첨부되어있어 이해를 도와준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정작 중요한 사택부분이 딱 중간이라서 책을 주리를 틀어야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 읽다가 위치를 확인하려면 다시 앞 장을 여는게 불편하다는 점 정도?
(은행나무 출판사에 북스피어의 책표지 안쪽 활용이라는 아이디어를 살짝 알려주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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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선♪
독서일기2011. 7. 28. 16:45

내심장을쏴라제5회세계문학상수상작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정유정 (은행나무, 2009년)
상세보기




수험생이 건넨 책을 받아 펼쳐봤다. 찢어진 책장들이 풀과 스카치테이프로 정성스레 붙여져 있었다. 구겨진 책장에는 다리미로 누른 흔적이 남아있었다. 목젖이 묵직해져왔다. 서글픈 것을 본 탓이리라. 그가 책장과 함께 붙인 것, 다리미로 눌러 없앤 것. 그건 알코올 중독자이자 노숙자였던 한 남자의 희망과 절망이었다. 167

"어쩔 수 없을 때도 있어. 살다보면, 가끔." 321

"최근 들어 자주 꿈을 꿨어. 한 번씩 꿀 때마다 그날 밤에 성큼 접근해 있었고. 난 두려웠어."
"꿈꾸는 게?"
"아니. 내가 벼랑에 발끝으로 버티고 서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게. 인정하면 선택해야 할 테니까. 발을 떼버리거나, 그날 밤을 끌어내서 진실과 대면하거나." 323-4

운명이 내 삶을 침몰시킬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작가의 말.




정신병원이 배경이라는 점에서 덴도 아라타의 '영원의 아이'가 생각나기도 하고,
두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는 이사카 고타로나 가네시로 가즈키의 작품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재미있다.
주인공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처절하지만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다 귀엽다.

정유정 작가를 만남으로써 일본소설만 줄창 읽어대던 내 습관이 변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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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