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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이 건넨 책을 받아 펼쳐봤다. 찢어진 책장들이 풀과 스카치테이프로 정성스레 붙여져 있었다. 구겨진 책장에는 다리미로 누른 흔적이 남아있었다. 목젖이 묵직해져왔다. 서글픈 것을 본 탓이리라. 그가 책장과 함께 붙인 것, 다리미로 눌러 없앤 것. 그건 알코올 중독자이자 노숙자였던 한 남자의 희망과 절망이었다. 167
"어쩔 수 없을 때도 있어. 살다보면, 가끔." 321
"최근 들어 자주 꿈을 꿨어. 한 번씩 꿀 때마다 그날 밤에 성큼 접근해 있었고. 난 두려웠어."
"꿈꾸는 게?"
"아니. 내가 벼랑에 발끝으로 버티고 서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게. 인정하면 선택해야 할 테니까. 발을 떼버리거나, 그날 밤을 끌어내서 진실과 대면하거나." 323-4
운명이 내 삶을 침몰시킬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작가의 말.
정신병원이 배경이라는 점에서 덴도 아라타의 '영원의 아이'가 생각나기도 하고,
두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는 이사카 고타로나 가네시로 가즈키의 작품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재미있다.
주인공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처절하지만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다 귀엽다.
정유정 작가를 만남으로써 일본소설만 줄창 읽어대던 내 습관이 변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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