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설'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7.28 내 심장을 쏴라
  2. 2011.07.27 생강
독서일기2011. 7. 28. 16:45

내심장을쏴라제5회세계문학상수상작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정유정 (은행나무, 2009년)
상세보기




수험생이 건넨 책을 받아 펼쳐봤다. 찢어진 책장들이 풀과 스카치테이프로 정성스레 붙여져 있었다. 구겨진 책장에는 다리미로 누른 흔적이 남아있었다. 목젖이 묵직해져왔다. 서글픈 것을 본 탓이리라. 그가 책장과 함께 붙인 것, 다리미로 눌러 없앤 것. 그건 알코올 중독자이자 노숙자였던 한 남자의 희망과 절망이었다. 167

"어쩔 수 없을 때도 있어. 살다보면, 가끔." 321

"최근 들어 자주 꿈을 꿨어. 한 번씩 꿀 때마다 그날 밤에 성큼 접근해 있었고. 난 두려웠어."
"꿈꾸는 게?"
"아니. 내가 벼랑에 발끝으로 버티고 서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게. 인정하면 선택해야 할 테니까. 발을 떼버리거나, 그날 밤을 끌어내서 진실과 대면하거나." 323-4

운명이 내 삶을 침몰시킬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작가의 말.




정신병원이 배경이라는 점에서 덴도 아라타의 '영원의 아이'가 생각나기도 하고,
두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는 이사카 고타로나 가네시로 가즈키의 작품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재미있다.
주인공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처절하지만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다 귀엽다.

정유정 작가를 만남으로써 일본소설만 줄창 읽어대던 내 습관이 변할 것 같다.

'독서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가니, 책 그리고 영화.  (1) 2011.09.24
7년의 밤  (0) 2011.08.03
생강  (0) 2011.07.27
마리아 비틀  (2) 2011.07.25
찾거나 혹은 버리거나 in 부에노스아이레스  (0) 2011.07.12
Posted by 유선♪
독서일기2011. 7. 27. 14:01

 

생강 - 8점
천운영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어둠 때문이다. 어둠은 소리를 부풀리고 소리의 근원을 왜곡시키는 법이다. 보이지 않아서 정체를 알 수 없고, 정체를 알 수 없어서 두려운 것이다. 알 수 없음이 공포를 조장하고, 공포는 공포를 증폭시킨다. 공포에 굴복해서는 안된다. 어둠에 속아서는 안된다. 100

비밀을 나눠갖는 것이 관계를 공고히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었다. 가까운 사람들만이 비밀을 공유할 수 있으며, 비밀의 공유여부가 관계의 척도라고 믿었다. 하지만 비밀이 때때로 폭력이 된다는 것도 잘 알았다. 비밀을 공유하자는 것은 무거운 짐을 나눠지자는 것이었다. 짐을 나눠들자고 덤벼드는 비밀은 너무나 일방적이어서 원하지 않아도 짐을 질 수밖에 없었다. 136

물이 차갑다. 더운물을 틀어드릴게요. 너무 뜨겁다. 내 손도 뜨거워요. 난 잘못한 것이 없다. 사람을 때리는 건 어쨌든 나빠요. 내가 때린 건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이었어요. 틀린 사람들이었다. 다른 사람이었지요. 맞을 만해서 맞은 거다. 맞을 만해서 맞았다고 믿게 만드는게 더 나빠요. 정의를 위해서였다. 당신을 위해서였어요. 아버지를 위해서였다. 아버지는 당신을 버렸어요. 가족을 지키려고 그랬다. 그래서 다른 가족들이 사라졌죠. 이제 곧 끝난다. 끝은 없어요.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 그들한테 왜 그랬어요. 할일을 했을 뿐이다. 하지 말아아 할 일을 한 것이죠. 내가 죽기를 바라는 것이냐. 살기를 바라는 거죠. 이건 내가 아니다. 그게 당신이에요. 내가 한 일이 아니다. 당신이 한 짓이에요. 내가 아니다. 당신 맞아요. 259-60



어딘가에서 본 추천도서였다.(아마도 시사인 기사.) 
정유정, 김애란 작가의 책을 보고서 우리나라 작가들의 책도 좋구나. 재밌구나. 그동안 일본 엔터테인먼트 소설만 골라 읽던 내 맘 한켠의 무거움을 털어버리려 도서관 사이트에서 찾아 예약해놨다. 그리고 예약했던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있던 어느날 이 책을 찾아가라고 문자가 왔다.


나는 생강을 잘 씹는다. 잘 씹는다고 쓰고나니 좀 우습지만 사실이 그렇다.
언젠가는 오랜만에 온가족이 모여앉아 밥을 먹는데 에잇. 생강씹었다. 잠시후 또 한 번.
엄마는 딱 두 조각 넣은 생강이 왜 다 너에게만 가느냐며 웃으셨다.

 
아무튼 묘하게 나는 생강을 자주 씹는다는 생각에 일단 책 제목을 보고서 정이 갔다. 그리고 '생강'하고 발음 했을 때 입속에 살풋 느껴지는 바람, 왠지 은은한 향기가 날 것도 같은 느낌도 이 책의 첫인상이었다. 하지만 읽고나서의 느낌은 예고없이 덜컥 씹었을 때 입 안에 퍼지는 알싸한 매운 맛. 요리에 풍미를 더한다는 것은 알겠지만 삼키기 싫어 결국은 뱉고야 마는 당혹감과 비슷했다. 제목 그대로 정말 생강같은 책이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천운영 작가의 글은 삼키기가 힘들었지만 다 소화하기 힘들어도 꾸역꾸역 우겨 넣어야 했다.



고문기술자 이근안. 책에서 '안'으로 등장하는 남자. 
실제로 그가 도피한 계기는 이 사건이 아니지만 책에 잠시 등장하는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이 내가 태어나던 1987년, 그리고 그가 자수한 1998년에 나는 겨우 초등학교 6학년 꼬맹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책을 다 읽고 찾아보기 전까지는 그가 실존하는 인물이라고도 생각 못했으니까.
 
출소 후 목사가 되었다 한다. 그리고 글로 써도 되겠냐는 작가의 물음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살고싶다고 했다 한다. 본인은 이 책을 읽었을까. 궁금하다.

이런 사람이 아직도 곳곳에 있기 때문에 설사 콱 씹어버려 당혹스럽더라도 생강이 빠져서는 안 된다.
조금이라도 꼭 들어가 제 몫을 해야한다. 이렇게 생강같은 책이 계속 나와야 하고, 많은 이들이 읽어야 한다.
 


오랜만에 동생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을 만났다.



'독서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7년의 밤  (0) 2011.08.03
내 심장을 쏴라  (0) 2011.07.28
마리아 비틀  (2) 2011.07.25
찾거나 혹은 버리거나 in 부에노스아이레스  (0) 2011.07.12
완득이  (0) 2011.07.03
Posted by 유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