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2011. 10. 30. 18:17


드디어 터졌다. 실력이? 포텐이? 아니 심사평이.

막걸리나가 이전 무대와 비교해서 선곡이 좋았다거나 실력이 월등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 무대가 이토록 칭찬을 받는 이유는 그동안 심사위원들이 인정하지 않았던 그들의 무대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내가 생각하기에 버스커버스커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포인트와 버스커버스커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포인트는 일치한다고 본다. 완벽하지 않음, 미묘하게 어긋나는 코드진행, 흥분해서 빨라지는 비트, 아직도 묻어나는 아마추어적인 색깔. 어떤 사람들은 그런 면에서 매력을 느끼고서 팬이 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런 점이 못마땅해 비판을 한다. 이제까지 슈퍼스타K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이 후자 쪽이었다면 이번 막걸리나 무대를 기점으로 전자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특히 같이 작업해본 윤종신 심사위원은 완전히 전자 쪽으로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그 유명하다는 종신보험 가입?!)


윤종신 심사위원은 스스로 ‘고리타분하게 봤던 것 같다’고 인정하면서 장범준군의 창의성이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고, 자신의 곡을 더 좋게 바꿔주어서 고맙다며 98점이라는 (전체적으로 점수가 짠 윤종신으로써는) 이례적인 높은 점수를 주었다. 이 방송을 보면서 윤종신이 높은 점수를 준 것보다도 더 놀라웠던 것은 스스로 반성한다는 말, 프로듀서 그리고 가수로써 상당한 지위를 가지고 있음에도 이제 막 대중에게 한걸음 다가선 초짜밴드에게 내 곡보다 더 좋게 만들어주어서 고맙다고 칭찬하는 윤종신의 소탈하고 솔직한 발언이었다. 방송을 떠나서 인간적으로 본받을만한 훌륭한 사람이구나, 열린 사람이구나. 새삼 생각했다.



사실 이번 미션곡이 막걸리나라는 스포일러가 방송 며칠 전부터 돌았다. 반응이 엄청났다. 많은 사람들이 굉장히 우려를 했고 소수의 어떤 사람들은 해당 심사위원에 대한 비난까지 서슴지 않았다. 과열되는 분위기가 걷잡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나는 윤종신 노래를 전부터 좋아하는 편인데다 막걸리나 자체가 재미있는 곡이고 장범준의 편곡실력이라면 신나게 잘 편곡할 것 같아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괜찮을 것 같다는 요지의 글을 한 커뮤니티에 썼다가 뭐가 괜찮냐는 타박을 듣고 충격을 받기도 했다. (물론 우려하는 의견도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모 CF에 삽입되었던 곡이고 가사에 진중함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니까. 다만 무조건 진중하고 무게감이 있어야 멋있고 그래야 예술이라는 생각이라면 난 절대 반대다.)



어찌됐든 생방송 무대는 성공적이었다. 역시 장범준의 편곡실력에 대한 믿음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냉담했던 이승철 심사위원과 윤종신 심사위원한테서 극찬을 받고, D모 커뮤니티에서 장범준은 장편곡이라는 별명을 획득할 정도였으니까. 역시 버스커버스커다운 무대였고, '거품이다.' '인기로 겨우 살아남았다.' 는 비판에 보기좋게 강펀치를 날려 주었다. 특히나 재밌고 즐거운 버스커버스커의 무대에 이어 비장하면서도 웅장했던 울랄라세션의 무대가 어우러지면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도 시너지효과를 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번주 생방송 무대의 결과가 갈린 것은 네 팀 다 썩 잘된 선곡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보여준 팀과 그렇지 못한 팀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대체 이 허술해보이는 세 청년이 이토록 승승장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이유가 방송에서 윤종신 심사위원도 언급한 바 있는 창의성, 자신감 그리고 무대를 즐기는 마음 정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버스커버스커의 자작곡을 듣다보면 음악적 소양이 없는 평범한 내가 들어도 ‘어? 뭐지?’ 하는 생각이 들만큼 자연스럽지 못한 코드진행이 있을 때도 있다. 그게 의도적인지, 실수인지는 모르겠지만 신기하게도 그게 나쁘지가 않다. 이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방송에서 보면 윤종신 심사위원이 장범준이 코드를 ‘틀리게’ 따왔다고 표현한다. 그런데도 그게 나쁘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10월 29일 '오늘 아침 심현보입니다' 에 출연한 김광진씨는 버스커버스커의 동경소녀에 대한 언급 중에 ‘코드를 원곡과 다르게 따왔더라구요’ 라고 표현한다. 그러면서 편곡을 잘해왔다고 칭찬을 했다. (김광진의 이 말 한마디에 감동받은 장범준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었다고 한다. 방송에서는 1초만에 지나가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울었는지조차 모른채 넘어갔지만.) 같은 팀 멤버인 김형태가 “원곡을 안 듣고 해요.” 라고 방송에서 말한 바도 있다. 물론 원곡을 전혀 안 듣는 것은 아닐거다. (일단 무슨 노래인지는 알아야 할테니까.) 그런데 그걸 자기가 부를 때는 일단 자기식으로 해석해버리는 장범준의 창의성은 그대로 버스커버스커의 색깔이 된다. 이쯤되면 거의 ‘장범준 필터’ 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다. (그에게 있어 음악은 본인의 감성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라는 점에서 미술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렇게 자기 색깔이 너무 강하다보면 다른 사람이 듣기에 거북해질 위험성이 있는데 그런 우려는 김형태라는 멤버가 있어서 어느정도 해소가 된다. 팀원 중 가장 어리고 마냥 귀여워 보이는 이 청년이 의외로 곡 전체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고 형한테도 할 말은 꼬박꼬박 다 한다. (심사위원이 자기 팀 리더한테 혹평을 하고 있는데도 틀린 말 하는게 아니라며 끄덕끄덕 하고있다.) 재밌게도 팀에서 가장 어린 김형태가 장범준의 자유분방함과 신나면 빨라지는 드러머 브래드를 조율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 같다.


할 말은 하는 형태. 바로 수긍하는 범준.


그동안의 무대에서는 자신감 없는 모습이었다는 이번주 윤미래 심사위원의 심사평에 난 고개를 갸우뚱했었다. 어느 부분이 자신감이 없다는 건지 찾을 수가 없었으니까. (자신감 없는 사람이 노래하다 갑자기 뛰어나와서 안경을 던질 리가.) 오히려 이 팀은 굉장히 자신감과 자부심이 충만하다고 본다. 오디션프로에 나온 참가자들의 탈락수순 중 가장 안타까운 것이 심사위원의 지적 → 고치려고 노력 → 잘 안됨 → 자신감 하락 → 결국 자기 본모습마저 잃어버리고 탈락. 이 과정이다. 지적을 고치느라 자기 색을 잃어버린채 탈락해도 심사위원은 책임져 주지 않는다. (예를들자면 위대한 탄생 시즌1에서 참가자 조형우가 끝끝내 '클럽에도 가는 교회오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이런 수순으로 탈락해버려서 굉장히 아쉬웠다.) 버스커버스커는 끊임없이 리드보컬에 대한 지적을 받아왔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결국 팀 색깔과 창의성으로 이를 극복해낸다. 팀 사운드와 자신들의 개성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면 이는 결코 불가능했으리라. 대 선배인 원곡자 윤종신에게 "어, 그 부분 좋은데요? 그녀가 나를 사랑해" 라고 말 할 수 있는건 자신감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다.



버스커버스커는 무대매너가 굉장히 좋고 스스로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기타소리 안 나와서 당황했던 동경소녀 무대만 제외다.) 이는 보는 이에게 즐거움과 안정감을 준다. 처음엔 거리공연을 많이 해서 경험으로 체득했나보다 했는데, 고등학교 축제 때 동영상을 보고 ‘아, 이건 타고났구나’ 하고 생각했다. 고등학생이 무대 위에서 “가까이 오세요. 할 말이 있어서 그래요.” 라니. 이건 타고난거다. 특히나 이번 막걸리나 무대에서는 “아하하” 하는 장범준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새로 산 기타(무려 화이트 팔콘)를 자랑하듯 신나게 연주하고서 사운드에 만족한 듯이 아하하, 귀여운 손동작까지 곁들인 랩을 하고서 아하하, 헤이 누나~ 하고서 또 아하하. 브래드의 막걸리 가자에 이어 아하하. 일부러 넣으려 해도 이렇게는 못할거다. 너무너무 즐겁고 좋아서 죽겠다는 그 웃음소리는 드럼, 베이스, 기타에 이어 이들의 네 번째 악기가 되었다. 월요일날 출시될 음원에서는 웃음소리가 빠지겠구나 생각하니 벌써부터 아쉬워질 지경이다. (수정 : 이글 쓸 때는 당연히 음원에서는 웃음소리가 빠질거라 예상하고 이렇게 썼는데 음원에 깨알같이 웃음소리도 들어갔다. 음원녹음팀 땡큐베리감사해요.엉엉)


새로 산 기타에도 깨알 같은 시그니처 B




버스커버스커를 보고 있으면 ‘아, 얘들은 진짜구나. 진짜 즐겁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누군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곤 하는데, 버스커버스커 노래는 분명히 신나는 노래인데도 반복해 듣다보면 자주 울컥하곤 한다. 말로는 설명 못할 마음 한켠을 건드리는 음악이다. 혹자는 이런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연주도 보컬도 빼어나지 않는데 왜 이런 인기를 얻는지 모르겠다고 평할 수 있다. 하지만 보컬이 빼어나지 않더라도 공감할 수 있는 감성에 반해 많은 사람들이 인디음악을 사랑하는 것처럼 나는 그들의 감성이 마음에 든다. 지금 이순간이 너무 즐겁고 신나죽겠다는 그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어떻게 함께 즐겁지 않을 수 있겠냐고 생각한다. 그리고 팬으로써 이들의 음악이 발전하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이 감성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슈퍼스타K 음원녹음을 담당하는 김지웅씨가 자기는 버스커버스커 음악을 들을수록 이들에게 ‘기본과 정석’을 가르쳐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고 하고, 보컬코치 박선주씨는 클래식이 아닌 대중음악이라면 화성악이라는게 꼭 필요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코멘트 했다. 전문가들로 하여금 그들이 기본 전제라고 생각해왔던 것을 다시 한 번 의심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팀.
이 팀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계속 보고 싶다.




Posted by 유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