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2014. 3. 16. 02:15

할 말이 정말 많았는데, 시험 끝나면 하려고 미뤄왔던 포스팅.

노량진 MIB 관찰기 시작.

 






#1 첫 느낌.

MIB를 처음 본 건 아마도 2013년 상반기의 어느 날, 아는 후배를 만나서 노량진과 노들역 사이 골목으로 들어섰던 날, 물론 내가 노량진에서 공부를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어느 날이었다. 만 3세부터 간판 덕후의 기질을 보였던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길거리의 간판을 스캔하며 길을 걸었고, 문득 MIB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맨인블랙이라니, 불 꺼진 가게 안에서 왠지 외계인이 튀어나올 것 같은 상호를 보고 '여긴 무슨 가게일까. 간판이 마음에 드네.' 정도의 생각을 하며 무심히 지나쳤었다.


 


#2 탐색기.

어쩌다 보니 나는 노량진 끝자락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고, 밥 먹는 식당에 가는 길 중간에 있는 그 간판을 매일 보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 가게는 커피집이었고, 항상 손님이 가득했으며, 항상 신나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한두 번 정도 들어가볼까 고민했지만 매번 손님이 많아 그냥 지나치곤 했다.


 


#3 입성기.

결국은 투박한 메뉴판에 적힌 '뭐 먹을지 모를 때 먹는 맛있는 라떼'라는 메뉴 이름에 끌려서 그 커피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정체 모를 그 라떼는 기분 안 좋은 날에만 아껴먹는 스타벅스 돌체라떼와 유사한 맛이었고, 돌체라떼의 극악스런 가격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비슷한 맛의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굉장히 좋았다. 

 



#4 적응기.

MIB에 항상 손님이 많은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훈훈한 사장님과 직원분이 정말 언제 가도 밝게 웃으며 주문을 받는데다 센스와 기억력까지 좋아서 자주 오는 손님들이 어떤 메뉴를 시키는지 기억해뒀다가 주문 하기 전에 미리 물어본다. 손님이 그렇게 많은데 어떻게 그걸 다 기억하는지 정말 대.다.나.다. 


사장님은 손님 없는 한가한 시간에 산책도 자주 다니시는데 길에서 마주치면 왠지 반가워서 나도 모르게 인사를 하게 된다. 

 



#5 메뉴 섭렵기.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MIB의 No Yeah가 되어 메뉴를 차근차근 섭렵해갔다. 핸드폰 액정을 박살내고 우울할 때 시켜본 쿠앤크 라떼부터 밤에 먹어야 제 맛이라는 밤 라떼, 당 떨어지고 우울할 때 먹는 맛있는 라떼, 노말한 날 먹는 (그냥) 다거품 라떼까지. 


맛있는 라떼는 돌체라떼 노량진 버전, 밤 라떼는 바밤바 녹인 맛, 쿠앤크 라떼는 쿠앤크 녹인 맛.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밤 라떼와 쿠앤크 라떼는 샷 추가해서 먹는 게 맛있쪙.)

 



#6 폭주기.

자주 가다 보니 사장님 & 직원 분과 몇 마디 담소도 나누게 되었고, 타고 난 오지랖과 개그본능으로 어느 새 카운터 안쪽 사장님과 직원 분을 웃겨야 한다는 쓸데없는 사명감이 생겼다. (정말 이런 주책이 없음) 하지만 개그가 통하는 날은 Size-UP!을 해준 것 같은 느낌적 느낌. (직원 분은 이야기 안 해봤을 땐 굉장히 프로페셔널해 보였는데, 조금 이야기 하다 보니 빙구 매력 장난 아님.) 


아무튼 막판 2주는 참새 방앗간 들르듯 매일 같이 들렀다. 특히 일주일에 한두 편씩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보던 드라마 마저 끊은 이후에는 거의 MIB 라떼 파워로 공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7 결론_ 안 가볼 순 있어도 한 번만 가볼 순 없을걸?


사실 노량진 MIB라고 검색했을 때 뜨는 '나도 공부 때려치우고 커피나 팔까.' 류의 글을 보고 왠지 포스팅 의지가 불타 올랐더랬다. 


관찰한 바에 의하면 이 가게는 '청년'이라서 할 수 있는 형태의 가장 효율적이고 전략적인 가게인 것 같다. (젊은 자영업자의 으쌰으쌰 프로젝트를 보면 항상 부러운 마음이 든다.)  


좁은 가게에서 손발이 짝짝 맞는 환상 호흡을 보여주는 모습도 보기 좋고, 밀려드는 손님에도 지치지 않고 매번 친절하게 웃으며 반겨주는 서비스 정신은 정말 대단하다. 그 점이 손님이 많은 가장 큰 이유 아닐까 뭐 그런 생각. 단순히 '훈남계(?)'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가만히 지켜보니 은근히 남자 손님도 많은데, 자주 주문하는 메뉴 먼저 물어봐주면 남자 손님들도 하나같이 굳어진 얼굴이 활짝 펴지더라. (웃을 일 없는 노량진 생활에 겨우 숨 좀 쉴 수 있는 잠깐의 휴식 같은 기분, 나만 느낀 건 아닐테지.)


밥 먹으러 갈 때 마다 가게 앞을 지나다 보니 매일 아침 정확한 시간에 오픈 준비 하는 모습, 손님 정신 없이 몰려들 때 후다닥 주문 소화해내는 모습을 자주 봤는데 그럴 때면 왠지 '개콘 끝났다 정신차려라 하는 다큐 3일' 실사판을 보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동기부여도 됐다. 이래저래 고마운 가게. 이제 시험이 끝나서 자주 가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2014. 3. 22. 토요일 오후. 안 보일만큼 열심히 일하는 사장님.ㅋㅋ






 

#아쉬움이 남은 자의 MIB 이용 팁.



1. 아침, 점심, 저녁 시간에는 손님이 너무 많아서 여차하면 주문도 못하고 한참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특히 이럴 때는 아메리카노가 빨리 나오고 라떼 류나 레시피 복잡한 메뉴는 더 천천히 나오니까 여유를 갖고 주문하는 게 좋음.(손님들이 써놓은 메모 구경하다보면 시간 후딱 감.)


2. 손님 적은 한가한 시간대에는 두 분이 춤 추고 놀고 있을 지도 모름. 감시 요함.


3. 사장님은 부인하시지만 손님 없을 때 가면 왠지 커피가 더 맛있게 나오는 것 같은 느낌적 느낌.  


4. 개인적으로 추천 조합은 밤라떼+샷추가+시나몬 팍팍. 맛있는 라떼+시나몬조합도 좋음. 


5. 시럽 들어가는 메뉴는 전반적으로 당도가 높은 편이니까 단 거 별로 안 좋아한다면 "덜 달게!"를 강조해야 실패 확률이 적다. 


6. 쿠앤크 라떼는 먹고 나서 바로 양치질 할 수 있을 때만 주문할 것. (무심코 웃다가 썸남 도망가도 책임 못짐.) 


7. 맛있는 라떼 누적 판매 숫자는 드립(?)이 아니라 실제 포스 기록임. 거짓말 아니냐고 했다가 사장님의 '매우 억울한 표정'을 목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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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B 매뉴얼과 합격 주문서. (포스에 이런 항목이 있을줄이야.)







사장님 말씀.







Posted by 유선♪